박석환, 불황? 희망이고 축복이라니까


현재 출판만화계는 역대 최악의 불황 터널을 달리고 있다. IMF사태에 따른 경기침체, 청소년보호법 실행에 따른 유통망 축소, 경기불황에 따른 가계소비 감소 등이 주원인으로 꼽힌다. 부수적으로는 판매가 아닌 대여 형식의 비효율적 유통구조 등을 든다. 그러나 이점만으로는 석연치 않다. 경기침체로 주 소비층인 10대의 용돈이 줄어서 만화를 사보지 않는다면 댄스가수들의 ‘밀리언 음반’ 역시 나오지 말았어야 한다. 18세 미만의 청소년보호를 위해 만화계의 소수장르인 성인만화를 별도 관리한다고 해서 만화계 전체가 죽을 쓴다는 것도 있을 수 없다. 서점에서 구매하지 않고 만화방이나 대여방에서 빌려 보게 되어있는 유통구조 역시 유죄는 아니다. 만화방은 수 십 년 전부터 일정 부수의 판매를 담보해줬던 우리만화계의 최대 마켓이다. 그 때문에 이전보다 시장이 나빠질 수는 없다. 그렇다면 불황의 함정은 어디에 있는가? 

1990년대 초반은 우리만화의 르네상스라 할 만 했다. 당시 창간됐던 주간만화잡지 <아이큐점프>와 <소년챔프>는 일본 만화 출판사의 잡지 발행 및 단행본 출판시스템을 그대로 옮겨 온 것이다. 이 잡지를 만방에 알리고 이 같은 출판시스템을 받쳐준 작품은 일본만화 <드래곤볼>과 <슬램덩크>. 각 잡지, 각 출판사를 대표할 만큼 두 작품을 통한 매출효과는 거대했다. 더군다나 이를 전후로 문화산업과 만화미디어에 대한 일반의 관심이 증폭되면서 우리만화계는 전례없는 호황을 누렸다. 2000년에 들어서면서 IMF형 가계파산이 늘었고 생계형 대여점과 만화방이 대폭 줄어들었다. 이는 게임산업의 호황과도 무관하지 않아서 만화방은 사라지는데 PC방은 늘어났다. 만화는 라이벌이랄 수 있는 게임산업에 주소비층과 마켓을 눈뜨고 내주게 된 것이다. 경기가 좋을 때 만화사업을 준비한 업체들은 불황의 입구에서 줄줄이 만화잡지를 창간하는 악수를 거듭했고 결국 ‘줄 폐간 사태’를 불러왔다. 폐간의 여파는 기존의 잡지뿐만 아니라 만화계 전반을 뒤흔들었다. 문제는 재미였다. 대중음악 PC게임 인터넷과 비교해서 만화의 재미가 현저히 떨어졌고 결과적으로 ‘장사가 되지 않았다’. 만화방이나 대여점 주들은 업종을 변경했고 문방서점들은 만화책을 받지 않았다. 익숙해진 음식을 모른 척 할 수 없듯 한번들인 재미가 쉽게 떨어져 나갈 수는 없는 법. 그러나 보고 싶어도 볼 곳이 없었고, 보게 되고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재미가 없었다. 

얼마 전부터 출판관계자들 사이에서 ‘요즘 일본만화계도 시장이 좋지 않다’ ‘일본만화 사상 최고 히트작들의 연재가 끝나고 단행본이 완결되면서 시장 크기가 줄었다’ 등의 이야기가 떠돌았다. 최근 이 이야기는 ‘일본만화에 히트작이없는데 우리만화계가 잘될 일이 있느냐?’로 바뀌었다. 주요 출판사들이 발행하는 잡지는 대부분 일본만화 30%, 우리만화 70% 선을 유지한다. 30%의 일본만화는 자국에서 최고의 작품이고, 70%의 우리만화는 막말로 1등부터 꼴찌까지가 뭉쳐 있다. 결국 30%의 일본만화가 우리만화 잡지를 책임지고 있던 꼴이다. 일본만화계가 헛기침한번 하면 우리만화계는 독감에 걸릴 정도로 심지가 약했다. 지금 우리만화계는 천장에 걸어둔 굴비 빼먹듯 일본만화의 그 많은 작품들을 다 빼 먹었다. 이제 만화왕국 일본도 새로 작품을 만들어야 하고 우리도 예전처럼 헐값에 일본만화를 들여올 수 없다. 출판관계자들은 ‘지금 일본에 남아있는 작품은 국내에 소개될 수 없는 포르노물 밖에 없다. 왠만한 건 다 들어왔고 새로 연재되는 작품들은 원가가 비싸서 우리 시장을 기준으로 하면 손해다’라고 말한다. 작품 자체의 재미도 문제거니와 물리적 재미도 수월치 않아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출판사들은 10여 년간 70%의 우리만화를 수록하면서 작가를 키우고 작품 경쟁력을 높였다. 그 결과 작품 자체의 경쟁력으로 일본만화와 우열을 겨룰 수 있는 것도 여러 편 나왔고 밀리언셀러도 등장했다. <드래곤볼>과 <슬램덩크>가 일본만화를 대표한다면 <힙합>과 <짱>은 우리만화를 대표한다. 소년지 시장을 게임에 빼앗겼다면 <오디션>이나 <코믹>으로 대표되는 소녀지 시장은 여전히 살아있다. 문제는 재미이고 작품의 완성도이다. 이점에 있어 거대한 시장규모와 만화인구를 지닌 일본만화의 수렁에서 빠져 나오기는 힘들다. 재미나 완성도가 한 작품에 들이는 노력의 결과라고 한다면 그 노력은 비용으로 지불돼야 한다. 하지만 우리시장 규모는 이 비용을 책임질 수 있지 않다. 물론 그것은 출판만화 시장에 국한된다. 

만화는 영상문예 장르의 위대한 스승이자 디지털미디어 시대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다. 출판만화가 불황이라고 하지만 대중은 ‘무슨 소리냐?’고 할 것이다. 그만큼 지금 우리는 만화 이미지로 충만한 세상에 살고 있다. 이점에 있어 만화계는 소극적인 자세를 취했다. 만화책 팔기에만 급급했다. ‘기획력 부재, 마케팅 전무’라는 만화계 내부의 자아비판은 결국 출판만화에 여전히 희망이 있음을 뜻한다. 수익도 나지 않는 만화잡지를 ‘찌라시’라 생각하며 발행했고 연재작품을 엮어서 만든 만화책을 상품으로 팔았다. ‘찌라시’에 들이던 돈은 기획과 마케팅에 쏟고 ‘찌라시’의 급을 만화책으로 높일 필요가 있다. 잡지처럼 손해나면서 팔라는 소리가 아니라 단행본 판매 수익을 기본으로 영상문예와 디지털 미디어 영역의 상품 기획을 수립하자는 것이다. 잡지 연재 고료가 없는 전작 단행본 출판, 인쇄비와 물류비를 줄일 수 있는 전자만화출판, 별도의 계약금없이 판매인세만 지급하면 되는 복간작 출판, 검증된 소수시장을 중심으로 한 맞춤 기획출판 등은 기본이다. 여기에 만화 내용을 중심으로 캐릭터, 영화, 방송, 애니메이션, 게임 등의 다양한 미디어와 TV, 스크린, 케이블TV, 위성방송, 인터넷PC, 씨디롬, DVD, CDMA2000용 휴대폰, PDA 등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채널에 공급할 수 있는 콘텐츠를 제작해야 한다. 그밖에 만화를 이용한 실물상품과 디지털상품을 공급자 입장에서 계발해야 한다. 이것만으로도 신세기의 만화는 희망이고 거대한 축복이다. 이제 그 희망과 축복을 하나씩 챙겨보자.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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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평론가 박석환 교수(한국영상대 만화콘텐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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