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한국애니메이션도 팬을 따라 성장해야-뽀로로, 폴리, 타요로 끝나면 안 될 일, 2012.4.22

애니메이션을 보며 성장한 아이처럼

한국애니메이션도 팬을 따라 성장해야


애니메이션을 보기 위해 시간 지키는 법을 배웠어요

어린 시절 시간과 약속의 중요성을 알려준 것은 텔레비전이었다. 부모님의 말에 따라 자고 일어나기를 반복했고 배가 고프면 밥을 찾았던 그 시절. 아침에 일어 나서 텔레비전을 틀면 ‘어린이명작동화’가 끝났고 아이들과 뛰어 놀다가 집에 들어와서 텔레비전을 틀면 ‘아톰’이 끝났다. 동네 아이들 대부분이 보는 애니메이션을 나만 못 봤을 때의 실망감은 이루 말할 길이 없었다. 어떻게 하면 텔레비전에서 애니메이션 방영 시간을 정확하게 알 수 있을까? 나는 바늘 시계 보는 법을 배웠고, 신문을 펼쳐서 텔레비전 시간표를 찾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엄마가 깨우지 않아도 아침에 일어나서 ‘어린이명작동화’를 봤고, 형이 놀이터로 찾으러 오지 않아도 집에 들어가서 ‘아톰’을 본 후 저녁식사를 했다.  

아빠는 같은 시간대에 다른 채널에서 하는 보도 프로그램을 보려고 했었다. 그 때를 대비해 평소 아빠의 잔심부름을 했고 그 시간대에는 애니메이션을 보기로 약속 했다. 간혹 예정에 없던 스포츠중계가 할 때면 나와 아빠의 약속은 여지없이 깨졌다. 나는 약속의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아빠는 약속을 어겨야 하는 특수한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어찌됐든 애니메이션은 나에게 시간을 지키는 법을 알려줬고 약속은 경우에 따라 변경될 수도 있다는 점을 깨닫게 해줬다. 또, 재미라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게 해줬다.

애니메이션을 통해 친구들을 이해해요

어른이 됐다. 만화가, 만화출판사, 애니메이션제작사를 돕는 일을 한다. 작업 공간을 빌려주고, 제작지원금을 주고, 좋은 작품을 외국에 소개하는 일을 한다. 그러다보니 한 시도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보지 않고 살 수가 없다. 애니메이션 보기에 굶주렸던 어린 시절에 비하면 최고의 호사다. 그런데 전처럼 절실하지 않다. 솔직히 말하면 휴일만이라도 만화와 애니메이션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런데 그것 역시 간단치 않다. 내가 쉬는 주말이 아들에게도 주말이고 휴식일이다. 학원에 가지 않아도 되고, 학습지를 풀지 않아도 된다. 내가 아이였을 때처럼 아들 역시 애니메이션에 심취해 있다. 나의 천국을 위해 아들의 천국을 빼앗을 수 없는 일. 휴일이면 애니메이션에서 벗어나고 싶은 아빠와 애니메이션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아들이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다.

아들은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그리고 뭘 배우고 있을까? 내가 어린 시절 즐겼던 애니메이션은 대부분 일본에서 제작된 것이었다. 아이들을 대상층으로 했지만 어른들도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가족 프로그램이었고 전세계 시청자를 대상으로 제작된 작품이었다. 넓은 시청층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꿈, 모험, 도전, 우정, 가족애 같은 개념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대상층이 극도로 세분화됐다. 대상층이 명확해지면서 내용도 분명해졌다.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양식이 제시되면서 시청자들의 감정이입도 빨라졌다.  

아들은 한국 애니메이션 중에서 ‘뽀롱 뽀롱 뽀로로’를 좋아한다. 뽀로로는 뽀롱 뽀롱 숲 속 마을에 사는 호기심 많고 도전적인 꼬마 펭귄이다. 궁금한 것은 오래 못 참고, 생각해보기 보다는 먼저 경험해보고 깨닫는 스타일이다. 한 마리로 사고뭉치 말썽쟁이다. 하늘을 날지 못하는 펭귄이지만 멋진 비행을 꿈꾸는 몽상가여서 비행모자와 고글을 쓰고 다닌다. 숲 속 마을에는 뽀로로만 따라하는 아기공룡 크롱이 있고 영리한 꼬마 여우 에디, 옳은 말만 하는 비버, 덩치는 크지만 착한 곰 포비 등이 살고 있다. 어린이집에 다니던 아들은 순식간에 뽀로로의 세계에 빠져들었고 뽀로로를 자신과 동일시했다. 어린이집은 숲 속 마을이었고 자신은 뽀로로, 친구들은 크롱이고 에디가 됐다. 아들의 친구는 거꾸로 자신을 뽀로로로 하고 아들을 에디에 비유했지만 아들은 ‘제는 크롱이어서 자기만 따라한다’고 했다. 이처럼 ‘뽀롱뽀롱 뽀로로’는 5세 전후 아이들의 세계를 정확하게 분석하여 숲 속 마을에 담아냈다. 아들 역시 뽀로로와 친구들의 이야기를 통해 친구와의 관계에 대해 배웠고, 바른 생활습관과 위험한 상황에서의 행동 요령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학습하고 있었다.

아이들처럼 한국 애니메이션도 나이를 먹어야

얼마 전부터 한국 애니메이션은 유아용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빛나는 성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뽀로로’로 대표되는 유아용 애니메이션이 성공을 거두자 이보다 조금 연령대를 낮추고나 높인 경쟁작들이 대거 제작됐다. ‘치로와 친구들’ ‘눈보리’처럼 숲 속을 배경으로 한 작품에서부터 ‘타요’ ‘폴리’처럼 자동차를 소재로 한 작품, ‘꼬꼬몽’처럼 음식을 소재로 한 작품까지. 그야말로 유아용 애니메이션의 전성시대가 열렸다. 제작수준도 높아졌고 해외에서도 인기가 좋다. 한국이 만들고 세계가 본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뽀로로를 아는 외국 사람도 늘고 있다.

즐거운 일이다. 그런데 벌써부터 걱정이다. 아들은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으면서 이전에 즐겼던 애니메이션 대신 새로운 애니메이션을 찾고 있다. ‘뽀로로’를 땐 아들은 ‘폴리’와 ‘타요’를 거쳐 일본 애니메이션 ‘도라에몽’을 봤다. 초등학생이 된 지금은 일본 애니메이션 ‘탑블레이드’와 ‘바쿠만’을 보고 있고 곧 ‘유희왕’을 찾을 것이다. 그리고 조금 더 나이가 들면 컴퓨터 게임이나 스포츠의 세계, 이성과의 관계 등에 빠져 들것이다.  

아들처럼 한국의 유아용 애니메이션을 찾았던 세계의 팬들도 초등학생이 되면서 볼 한국 애니메이션을 찾지 못한 채 졸업을 선언하게 될 것 같다. 이미 해당층을 위한 일본 애니메이션이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터라 한국 애니메이션이 연령대를 높인 작품을 만든다 하더라도 경쟁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선전하고 있는 유아용 애니메이션 분야를 더욱 전문화 시켜가는 것이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출생률이 낮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유아용 애니메이션의 롱런을 기대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줄어드는 출생률에 맞춰 성장하는 팬층을 붙잡아 두려면 나이 먹는 팬과 함께 한국 애니메이션도 나이를 먹어야 한다. 유아들의 생활 태도를 애니메이션이 알려줬듯 청소년이나 어른들의 고민과 해법을 애니메이션이 알려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럼 우리 집 뽀로로는 애니메이션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애니메이션 속으로 다시 들어 갈 것이다. 꿈과 환상의 그 세계에서 오늘을 위로하고 내일을 설계할 것이다.

(끝)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1997년 스포츠서울 신춘문예에 만화평론으로 등단 후 <잘가라 종이만화> <코믹스만화의 세계> <만화리뷰쓰기> 등 만화평론서를 다수 집필했다. 현재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전략기획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만화책과 애니메이션을 보며 두 아들과 함께 계속 성장하고 있는 아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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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 만화콘텐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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