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만화야 놀자! 그림이 들려주는 이야기 이야기가 보여주는 그림, 삼성앤유, 2010.10.15

만화야 놀자! 그림이 들려주는 이야기, 이야기가 보여주는 그림


글, 그림을 아시나요


만화책 표지에는 작가의 이름이 적혀있다. 이름 앞에는 ‘글, 그림’이라는 표기가 붙는다. ‘글, 그림 이현세’라고 하면 만화작가 이현세가 글과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뜻이다. 이처럼 만화는 글과 그림으로 이뤄졌다. 여기에는 다양한 몸짓과 소리기호도 포함된다. 글과 그림은 인류가 의사소통이나 정보전달을 목적으로 사용한 최초의 도구였고, 몸짓 기호는 원시적 언어였다. 즉, 만화에는 인류가 사용했던 의사소통 방식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한 예로 외국어로 된 만화책이라 하더라도 조금 눈여겨보면 대강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것처럼 만화는 인류사회가 공통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의사소통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이는 많은 이들이 만화를 친숙하게 생각하게 하고,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하며, 오랫동안 기억하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


그림보다 설명적이고, 소설보다 환상적인 세계


만화는 흔히 제9의 예술이라고 한다. 제7, 제8의 예술인 영화와 사진이 시각예술과 현대기술의 조합으로 탄생 100년을 넘긴 것처럼, 만화도 얼마 전 100살을 넘긴 신종 예술 분야이다. 근대만화의 선구자로는 18~19세기에 활동한 풍속화가들을 꼽고 있다. 일본에서는 우키요에의 대가이자 목판화가인 카츠시카 호쿠사이, 영국에서는 판화가인 윌리엄 호가스, 미국에서는 신문삽화가인 리처드 아웃콜트 등이다.

초창기 만화는 인물풍자화의 형식과 목판화 또는 인쇄술의 발달과 함께 했다. 회화가 대체적으로 1장의 화면을 사용해 사실적 묘사에 치중했다면 호쿠사이는 사람들의 다양한 인면상을 단순·과장하여 묘사했고, 호가스는 여러 장의 그림과 함께 글자를 삽입하여 이야기 전달에 주력했다. 아웃콜트는 미국으로 이민 온 아이들에게 꿈과 상상을 부여했고 캐릭터성을 강조했다. 초창기 만화의 흔적과 표현 양식은 세계만화의 지역별 특색으로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유럽은 장중한 느낌의 그림소설 형식이 강하고, 일본은 기발한 상상력과 과장성이 도를 넘을 때도 있다. 미국은 주인공을 중심으로 한 영웅서사가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분명한 건, 만화가 그림보다 설명적이고 소설보다 환상적이라는 점이다.



쉼 없이 대중과 호흡하는 만화


만화는 인쇄술의 진보와 신문 산업의 발전과 함께 했다. 이 같은 기준 하에 1909년 대한민보 창간호에 게재됐던 이도영의 만평을 한국 최초의 만화로 꼽고 있다. 신문을 등에 없고 대중화됐던 만화는 잡지를 거치면서 정기성을 지닌 연재만화라는 개념을 정착시킨다. 이후 만화는 책과의 결합을 통해 만화+책이라는 독립적인 지위를 확보하게 됐고, 만화를 중심으로 한 신문·잡지 등을 탄생시켰다. 또한, 만화는 영상과 사운드를 결합시켜 만화+영화를 만들어 냈다. 1911년 뉴욕 해럴드 신문에 만화를 연재하던 윈저 맥케이가 자신의 만화를 만화영화로 제작한 <리틀네모>는 만화의 다매체 전략을 대표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허리우드 영화 <아이언맨>, <엑스맨> 등이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 것처럼 영화 <이끼>나 TV드라마 <식객>, PC게임 <열혈강호> 등은 한국만화가 원작이다.

미국의 만화출판사 마블이 영화사가 되고, 일본의 여러 출판사가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되는 것처럼 만화는 단순히 소재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만화적’인 요소의 색다른 유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근에는 스마트폰의 열풍과 함께 이른바 만화어플리케이션 개발이 늘어나고 있다. 이처럼 만화는 태생적으로 매체와 함께 성장했고, 새로운 매체를 통해 대중화 됐다. 만화의 쉼 없는 변신은 곧 대중과의 접촉 기회를 늘리는 요소가 된다. 자주 만나서 익숙해지는 것, 그것이 또 만화이고 만화캐릭터이다.



만화로 만들어지는 세상


만화가 문화콘텐츠로만 소비된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만화는 그 특유의 유쾌함·상상력·창의성·친숙함 등의 의미를 전혀 다른 쪽으로도 활용하고 있다. 일례로 프랑스의 앙굴렘시, 일본의 도토리현, 한국의 부천시는 만화도시를 표방하고 있다. 만화가들의 창작을 지원하는 한편, 관련 기업을 유치하고 만화를 통한 시민교육을 통해 문화복지를 증진시키고 있다. 도시행정과 디자인에 만화를 적극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만화는 가상 이미지에서 도시 기능과의 조화를 통해 물적인 이미지로 변하고 있다. 가짜였던 것이 진짜가 되고 믿기지 않는 현실이 되고 있다.

이는 만화 형식이 지닌 원시적 매력과 의사소통 방식상의 차별성, 그리고 새로운 매체와 함께 대중 속으로 파고드는 만화의 매력 등이 결합되어 나타나는 현상이다. 오늘도 만화는 변신 중이고, 세상은 점점 만화를 닮아가고 있다. 조금 더 쉽고 설명적이거나, 조금 더 환상적인 것으로. 그래서 모두들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것’을 찾고 있다. 그것이 곧 현실이 될 테니까. (끝)



시대별로 보는 걸작 만화 베스트10


박기정, 도전자

‘중앙일보’ 만평과 독창적 캐리커처로 유명한 원로작가 박기정은 60년대 한국형 장편서사 만화의 개척자이기도 하다. 스포츠만화로 분류될 수 있는 이 작품은 재일동포 사회의 문제와 갈등을 중심으로 주인공의 성장기를 다루고 있다.


김종래, 마음의 왕관


완벽한 데생과 유려한 펜선으로 60년대 전통 서사극화의 새장을 열었던 김종래의 가족드라마이다. 가난의 대물림 속에서 펼쳐지는 가족들의 사랑과 눈물, 좌절과 희망의 메시지가 담겼다. 인터넷서점을 통해서 전자책으로 읽을 수 있다.


고우영, 대야망

70년대 어른 독자들을 중심으로 신문 연재만화의 새 틀을 짰던 고우영이 어린이 잡지에 연재했던 전기만화이다. 공수도의 창안자이자 세계인으로서 한국의 꿈을 펼쳤던 최영의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다. 내년에 TV드라마로 제작 될 예정이다.


윤승원, 요철발명왕

80년대를 뒤흔들었던 명랑만화의 전성기를 대표하는 걸작이다. 윤승원의 초기 작품으로 매 회마다 기발한 발명품에 얽힌 이야기가 웃음폭탄을 만들어낸다. 최근 복간되어 아빠가 읽던 만화를 자녀가 함께 읽을 수 있게 됐다.


이현세, 공포의 외인구단

한국만화를 산업의 영역으로 이끌어낸 최고의 걸작이다. 80년대 후반, 책이 모자라 복사본이 돌았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연인에 대한 사랑과 야구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한 스포츠극화로 얼마 전 TV드라마로도 방영됐다.


허영만, 식객

2000년 이후 한국만화를 대표하는 주요 작품들은 대부분 허영만의 손을 통해 창작됐다. 그 중에서도 이 작품은 한국의 요리와 맛에 대한 이야기로 ‘국민만화’라 불릴 만큼 폭넓은 사랑을 받았다. 영화, 드라마에 이어 작품과 관련된 요리책이 출판되기도 했다.


스튜디오 시리얼, 마법천자문

한자 학습의 중요성이 강조되던 시기에 출간되어 만화를 교과서의 위치로 끌어 올린 작품이다. 탄탄한 스토리텔링과 캐릭터성을 바탕으로 ‘통글자 암기법’이라는 색다른 한자 학습법을 제시하며 매 해 히트상품으로 선정될 만큼 폭발적인 판매부수를 기록하고 있다.


윤태호, 이끼

300만 관객을 동원했던 영화의 원작만화이다. 만화의 재미와 이야기가 지닌 산업적 가치를 한 번 더 확인 시켜준 작품. 윤태호는 음산한 작화와 탄탄한 스토리텔링, 능수능란한 연출로 마지막 페이지까지 눈을 때지 못하게 한다.


최호철, 태일이

2009년 부천만화대상을 수상한 작가의 역작이다. 소외계층에 대한 따듯하고 진득한 시선으로 도시 전체를 스케치하고 있는 최호철이 ‘신념을 위해 노력하는 소년 전태일’을 그렸다. 아이들과 함께 읽기 좋은 성장만화이다.


정필원, 패밀리맨

인터넷 만화, 웹툰의 인기와 함께 실로 다양한 성향의 스토리텔러들이 인터넷 창작판에 몰리고 있다. 어떤 이는 자극적 소재로, 어떤 이는 화려한 천연색 그림으로 눈길을 끌지만 정필원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영웅 ‘아버지’를 불러냈다.


삼성앤유 사보 원고, 2010. 10. 15 


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콘텐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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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seokhwan

만화평론가 박석환 홈페이지. 만화 이론과 비평, 웹툰 리뷰, 인터뷰, 보도자료 등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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