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진흥법1-법 만능주의적 사고를 경계한다!, 2009.12.06

아이, 구... 아이구...

지금은 2009년이고 조금 후면 2010년이 오는데... 우리 만화계는 1997년의 혹독한 여름으로 시간여행을 하고 있는 느낌이다.

97년의 그때를 경험했던 만화인으로서 한말씀 올린다. 

최근 만화계 일각에서 '만화진흥법 제정'에 대한 논의를 재점화 시켰다.

처음 듣는 이도 많겠지만 어제 오늘 일도 아니었다.

그래서 좀 피곤하다.

만화진흥법이라는 것이 생산적이기보다 소비적이기 때문이다.

발전이라기보다 그간의 성과를 10년 전쯤으로 후퇴시키는 것이고,

새롭게 변화되고 있는 만화생태계를 통합한다기 보다는 각각의 이해관계자에 따라 대립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무슨 이유로, 누구를 위해, 왜 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을 펼쳐놓고 '위기'라면서 토론해보자고 한다.

그러니까 더 피곤하다.

누구도, 어떤 단체도 명확한 입장을 지니고 있지 않은데... 일단 모여보자는 거다.

한시가 바쁜 연말에 모르척하기도 힘들어서 난데없이 48시간을 이 이슈(?)에 집중해야 했다.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를 거치면서 우리 사회의 민주화 수준은 빠른 속도로 진척됐다.

규제 일변도의 만화관련 정책도 관 주도형 만화산업진흥정책으로 변화 발전했다.

그러나

90년대 중후반 일본문화개방과 함께 청소년보호법이라는 새로운 통제시스템이 구축되며

만화는 규제 대상이라는 신분을 그대로 유지하게 됐다.

그렇게 천국의신화 사태와 함께 규제 대상으로서의 만화는 조용히 봉인됐다.

그 때문에 만화에 대한 사회적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우리 만화계는 '만화진흥법'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당시의 진흥법은 규제나 통제의 방법을 만들겠다는 것이 아니었다.

보호 받고 성장해야 할 만화의 가치를 주목해 달라는 탄원이었고 선언이었다.

만화에 대한 가치를 '만방에 떨치어 크게 일어나서' 산업으로 성장시킬테니, 문화로 향유해주고, 예술로서 이해해달라는 요청이었다.

법으로 받은 상처를 법으로서 치료받고, 창작이라는 고도의 사상적 활동을 스스로 통제하겠다는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런데 만화계 일각에서 그 만화진흥법을 만들겠으니 모이라고 한다.

좋은 일 같이 해보자며 의견을 모으는 자리쯤일줄 알았더니 공청회를 위한 준비위원회라 한다.

공청회라면 이미 결과가 있고 이에 대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것이다.

그런 것이 만화계 내부에서 공론화 되어 있지도 않은 터에 일각의 논의를 확대해서 제시하는 것은 그렇지 않아도 지쳐있는 만화계를 더욱 피곤하게 만드는 일이다. 

앞뒤 더하고 뺄 것도 없이 만화진흥법의 골자는 

만화진흥을 위해 기구를 설립하고

위원회를 만들어서

등급심의와 인허가 업무 등을 하면서

진흥금고를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책임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니까 자꾸 피곤하다.

지금 우리 만화계의 상황은...

중대한 위기가 발생한 것인가?

법률 때문에 산업이 발전하고 있지 않은가?

심의로 인해 누가 잡혀간 건가?

만화로 인해 사회적 문제가 발생했나?

도대체 무슨 위기가 있어서 사람들이 그 위기와 해결책을 위해 모여야 하는가. 

올해는 만화100주년의 해였고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개원했다. 

지식교양만화를 중심으로  서점판매용 만화시장이 열렸고

새로운 만화유통망으로 인터넷과 모바일이 열렸고

웹툰은 차세대 만화콘텐츠의 핵으로 부상하고 있다.

잘되고 있는데 위기라고 한다.

맞다. 트랜드는 달라졌다.

소비자의 트랜드가 달라져서

수입출판사라 비판하던 이른바 출판3사의 만화가 위축됐다. 그것이 위기인가?

묻닫으라 소리치던 일일만화와 만화방은 흔적을 찾을 수 없게 됐다. 그것이 위기인가?

비판하던 출판만화의 일부 장르(코믹스)가 국내 시장을 잃고 해외 시장으로 나갔다. 그래서 위기인가?

온라인소비가 활성화되고 이에 따라 저작권이 불법적으로 유통되고,

이를 관리해야 할 제도와 또 이를 적법화 시키기 위한

사회적 노력과 훈련이 필요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런 고민은 나누자. 

하지만 이런 방식은 아니다.

절차와 과정이 있어야 하고

공론화의 단계도 중요하다.

이렇게 서둘러서 뻥 터뜨리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법 만능의 사고로는 만화계뿐만 아니라 국민적 설득을 얻지 못할 일이다.

관에서 만화를 잡겠다고 뛰는 것도 아니고

학부모 단체가 나선것도 아닌데

진흥이라는 미명아래 만화계 내부에서 만화를 규제하고 통제하는 법을 만들어야 하는가?

창작과 출판은 자유인데...

새로운 법이 아니더라도 규제하는 법은 도처에 있고

최근에는 이런 법을 내세워 단속하겠다고 나서지도 않는데 ...

만화 수입(코믹스)과 유통에 정부가 개입하고 통제할만큼 시장이 크지도 않다.

그 시장은 그만한 통제를 버틸 활력도 없어졌다.

또, 아카이브나 창작지원 등은 이미 다양한 기관들이 시행하고 있는데... 뭐 때문에...

만화계가 스스로 나서서

'나의 창작물을 나의 친구가 심의하고 등급을 매기는 법'을 만들자고 하는가

칭찬받을 일은 아니지만 법적 문제가 없는 수입만화출판을 무슨 이유로 통제하고, 그나마 존재하는 잡지만화시장을 흔드려 하는건가

만화총판과 유통의 폐악이 언제적 이야기인데 그것을 또 다른 전산망을 구축해 관리해야 한다고 하고

해외공동제작만화를 한국만화로 인정받고자 하는 수요가 얼마나 된다고 이를 사전신고하고 법률화 한다는 말인가.

20세기에 태어난 죄로 

21세기 시장과 소비자들을 분석하고 따라잡기도 버겨운데...

20세기에 논의했던 의제를 재탕하고 있어서야

21세기가 보이기나 하겠는가.

'출판만화'라는 제한된 영역이 아니라면

'만화'는 그 크기를 알 수 없을 만큼 변화하고 있다. 

소비자들도 만화독자라는 이름으로 규정할 수 없을만큼 달라지고 있다.

지금 우리는 최소한 그들이 만화의 이름을 지우지 않고 창작을 하고,

그 이름을 잊지 않고 소비하게 되는 미래를 위해 일해야 한다.

그것이 융복합시대에, 새로운 미디어 콘텐츠 시대를 맞이하는 만화인의 고민이어야 한다. 

그런 만화를 가두고 계체량하듯 등급을 매기는 일이 벌어져서는 안된다.

만화는 그 크기를 알 수 없다. 만화를 가두고 쉬게 할 수 있는 법을 만화인 스스로가 만들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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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seokhwan

만화평론가 박석환 홈페이지. 만화 이론과 비평, 웹툰 리뷰, 인터뷰, 보도자료 등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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