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조항리-소년의 꿈을 로봇에 담았던 멀티크리에이터, 플랫폼, 인천문화재단, 2009.05


조항리는 우리 만화계의 원로 중 매우 독자적인 위치를 확보하고 있는 작가다. 신문만화로 시작해서 잡지와 대본소만화를 거쳤고, 일본 산 TV애니메이션 작업에 참여한 뒤부터는 국내 극장용 애니메이션계의 탁월한 창안자이자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했다. 소년의 꿈을 로봇에 담았던 멀티크리에이터 조항리를 만났다.


1940년 서울 출생

1958년 <화등잔> 연재, ‘자유신문’

1960년 <혜성같은 소년>, 독수리문고

1965년 <소년탐정 살별이>, 희망문고

1967년 TBC TV 동화부 근무(애니메이션 <황금박쥐>, <요괴인간> 작화)

1970년 <잃어버린 지구>, 한국전자문고

1972년 <우수리> 연재, ‘명랑’

1976년 서울동화 전무이사 (애니메이션 <로보트태권브이> 시리즈, <똘이장군> 시리즈, <황금날개> 시리즈 각본, <우주전함거북선>, <혹성로보트썬더에이>, 감독)

1988년 월간 ‘우뢰매’ 경영 및 편집인(<우뢰매> 시리즈 각본)

1991년 <밤토리> 연재, ‘어린이문예’

1992년 <애니메이션 이론과 작화>, 불후문고

1994년 <극화기법>, 불후문고

2001년 <카툰의 세계>, 초록배매직스

현재 아동잡지 ‘소년’에 <무녀리패> 연재 중, 명지대 사회교육원 등에서 만화 관련 강의 중



‘태권브이’하면 김청기 감독이 떠오른다. 하지만 태권도를 하는 로봇이라는 설정을 제안했던 이는 조항리였다. 또 ‘황금날개’하면 김형배의 만화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를 창안하고 시나리오를 썼던 이도 조항리다. 조항리는 ‘똘이장군’, ‘우주전함거북선’, ‘우뢰매’ 등 인기 애니메이션의 산파 역할을 하며 그 시절의 소년들에게 꿈과 환상을 심어준 작가였다.

“고등학교 때 부터 만화를 그렸다. 처음 작품이 게재됐던 곳은 ‘학생’이라는 잡지였다. 만화가 고우영(본명 추동성)선생님의 형인 추동식씨가 편집장으로 있었다. 무작정 원고를 들고 갔는데 좋게 보셨는지 잡지에 실어줬다. 처음 원고료를 받고 작품이 게재된 것은 1958년이다. 아동문학가였던 강소천 선생님께서 편집장으로 있던 ‘새벗’이라는 잡지에서 <종달이>라는 작품을 했다. 그때 500원을 받았었다. 지금 가치로 치면 5만 원 쯤 되지 않을까 싶다. 그 잡지에 신동헌(국내 최초의 극장용 애니메이션 ‘홍길동’의 감독), 김성환(‘고바우영감’으로 유명한 시사만화가) 선생님의 작품이 연재됐는데 당시 최고의 만화가로 평가 받던 분들과 함께 연재한다는 것이 꿈만 같았다.”

조항리는 신동헌의 만화를 좋아했다고 한다. 신동헌은 기발한 상상력과 해학 넘치는 작품을 주로 창작했다. 시사만화 쪽에서는 세태풍자와 정치비판을 서슴지 않았던 김성환의 작품을 좋아했고 삽화나 펜화는 <코주부> 시리즈로 유명한 김용환 선생님을 좋아했다고 한다.

“1958년에 10개정도의 신문이 발행됐는데 모든 신문에 만화가 게재됐다. ‘자유신문’에는 <까불이박사> 시리즈로 유명한 김경언 선생님이 연재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보니까 연재가 끝났더라. 그래서 <화등잔>이라는 네 칸 만화를 그려 갔다. 당시 문예부장이 명동백작으로 불렸던 박인환 시인이었다. ‘두고 가라’더니 실렸더라. 이후 김요섭씨의 연재소설에 삽화를 그리기도 했다. 우리가 하던 만화를 명랑만화라고도 하는데 우리끼리는 아이디어만화라고 했다. 한 두 칸으로 웃음을 선사해야 했기 때문에 기발한 상상력이 필요했던 분야다. 개인적으로는 추상만화로 유명한 설 스타인버그의 작품을 동경을 했고 그런 작품을 시도하기도 했는데 받아주지 않았다. 그래서 요즘은 만화의 시(詩)라고 할 수 있는 카툰 작업을 즐긴다.”

조항리는 한 때 대본소용 스토리만화를 창작하기도 했다. 볼거리가 없었던 그 시절, 대본소와 만화책은 현재의 핸드폰이나 DMB 같은 역할을 했었다. 전국적인 만화 붐이 조성됐지만 곧 이어 만화에 대한 사전심의가 생기고 수많은 작품들이 검열의 칼날을 맞으면서 ‘넝마’가 됐다.



“당시 <혜성 같은 소년>이 20권 가량 출판되며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군사정권에서 아동만화에 대한 사전 검열을 하기 시작했고 말도 안 되는 것들로 시비를 걸었다. 60년대 중반부터 만화창작에 대한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세기상사에서 신동헌 선생님을 모시고 국내 최초의 극장용 애니메이션 <홍길동>을 제작한다는 소식이 들렸는데 같이 만화를 그리던 김청기가 ‘우리도 만화영화 하자’는 제안을 했다. 그 때가 67년이다. 박영일 감독의 <선화공주와 손오공>에 애니메이터로 참여했다. 최근에 마케팅 관련 책을 보니까 ‘좀 더 좋은 것보다 먼저 하는 것이 좋은 것이다’라는 문구가 있더라. 같은 해에 시작했는데 2등이라 그런지 잘 모른다. 이후 TBC에 입사해서 <황금박쥐>와 <요괴인간> 등의 작업에 참여했다. 일본 사람들과 함께 작업했는데 내 실력을 높게 평가했었다. 처음에는 우쭐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잘한다고 어려운 부분만 주더라.”

애니메이터로서 조항리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린다. 한국형 로봇 애니메이션의 산파 역할도 했지만 일본 로봇 애니메이션을 표절했다는 비판 앞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김청기 감독하고 <로보트태권브이> 작업할 때 시나리오를 지상학씨가 썼다. 신춘문예에 당선된 작가라고 했는데 이야기 구조는 잘 만들겠지만 로봇만화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그래서 여관에서 시나리오를 쓸 때 로봇만화의 특성과 이런 저런 설정 등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함께 만들어 가기도 했다. 애니메이션을 처음 할 때는 원화와 동화 작업을 담당했다. 작업량도 많았지만 이런 저런 애니메이션을 많이 봤고 책도 많이 읽었다. 창작이란 것이 전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원형이 있고 이를 어떻게 변형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당시 아쉬운 부분도 많지만 새로운 것을 수용했다고 봐주면 좋겠다.”



조항리는 김청기 감독과 많은 작품을 함께 했다. <로보트태권브이> 시리즈가 가장 잘 알려져 있지만 <똘이장군>, <황금날개>, <우뢰매> 시리즈도 크게 인기를 모았다. 다수의 작품에서 애니메이터 겸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했고 <혹성로보트썬더에이> 등의 작품에서는 직접 감독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애니메이션의 생명은 기획이다. 그 때는 완구사, 출판사와 연계한 작품 기획을 많이 했다. 당시 일본 완구업체 대표를 만난 적이 있는데 ‘TV애니메이션은 30분짜리 장난감 광고’라고 하더라. 애니메이션을 너무 깔보는구나 싶기도 했지만 일면 참조할 만한 이야기였다. 그래서 우리도 당시 뽀빠이완구, 다이나믹코믹스 등과 손잡고 <슈퍼태권브이> 시리즈를 제작했다. 태권브이를 변신합체 로봇으로 만들어서 완구를 출시했는데 물건이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 <우뢰매> 시리즈도 기획의 승리였다. 당시 톱 개그맨이었던 심형래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국내 최초 실사합성 애니메이션이었다. 애니메이션 작업은 93년 까지 했다. 미일 합작 회사에 감독으로 있으면서 <고스트바스터즈> 등의 작업을 하기도 했다.”

조항리는 수집가로도 유명하다. 만화관련 자료를 꼼꼼하게 정리해서 관리하고 있고 이를 토대로 다수의 이론서를 집필하기도 했다. 미국의 마블코믹스가 발간한 작화 매뉴얼과 일본 애니메이터들이 집필한 제작 매뉴얼을 번역 했고, 카툰예술의 세계를 섬세하게 고찰한 저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현장에서 오랫동안 작업하다보니까 후배들이나 직원들에게 참고하라고 할 만한 교과서가 없었다. 그래서 작업하면서 모아왔던 다양한 자료들을 토대로 창작 매뉴얼을 번역하기도 했고 이를 정리해서 책으로 내기도 했다. 애니메이션 작업을 그만둔 후로는 좀 여유가 생겨서 이론서 집필이나 강의에 집중하고 있다.”

1909년 관재 이도형은 ‘대한민보’ 창간호에 최초의 만화를 발표했다. 그리고 올 해는 이 작품의 탄생으로부터 100년이 되는 해이다. 만화가, 애니메이터, 만화이론가 등으로 60년대 만화 붐을 주도하고 80년대 극장용 로봇 애니메이션 붐을 조성했던 조항리에게 오늘의 우리 만화계에 대해 물었다.

“과거에 비하면 정말 많은 부분이 변했다. 만화의 르네상스 시기라 할 만하다. 다만 극과 극이 좀 더 심해진 것 같다. 빛이 나는 영역도 있지만 그림자로 가려진 부분도 있다. 이 부분에 대해 좀 더 고민해봐야 할 때다. 아동만화 분야도 너무 학습 위주로 흐르는 것 같다. 만화는 뭔가를 알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는 것이다. 즐기는 것을 전제로 뭔가를 얻어야 하는데 지금은 역행하고 있는 것 같다. 순수창작 아동만화가 더 많이 나와야 한다. 그리고 로봇만화도 실종 되다시피 했다. 창작에 경제성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없지만 로봇만화를 그린다는 것은 일반 만화를 그리는 것에 비해 손이 많이 간다. 그래서 이를 그리려는 작가들도 많지 않다. 하지만 로봇만큼 만화적 요소를 지닌 주제는 없다. 또 로봇만화에 대한 수요와 관심은 꾸준한 편이다. 젊은 작가들이 아동 독자를 위한 순수 창작만화와 로봇만화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런 노력들을 독자들이 값지게 소비해주면 더 좋겠다.”



조항리는 현재 ‘소년’이란 잡지에 <무녀리패>라는 작품을 연재 중이다. 15년째하고 있는 대사 없는 만화다. 무녀리는 동물이 새끼를 낳을 때 제일 처음 나온 놈을 뜻하는 순 우리말이다. 언행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못난 사람을 뜻하기도 한다. 아직 성숙하지 못한 ‘변변치 않은 아이들’의 웃기는 일상을 담고 있다.

조항리는 무녀리라는 단어를 빌어 자신의 만화인생이 그리 훌륭하지 않았다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흠 없이 변변한 것이 어디 있을까. 완전하게 새 것이 어디 있을까. 그가 있어 로봇을 알게 된 소년들이 있고 그 시절의 꿈과 열정으로 오늘을 사는 이들이 있다면 그 추억의 역할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최근 만화계 내외부에서 당대의 대중문화사적 아이콘 중 하나였던 ‘태권브이’가 재평가되고 있고 ‘황금날개’에 대한 관심이 재점화 되고 있다. 그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추억이고 문화적 자산이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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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 만화콘텐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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