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만화100년이냐, 한국만화100년이냐, 2007.4.20

만화는 언제, 어디서, 누구에 의해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원형적 형식이라면 태고의 일일 것이고

동일한 표현 형식에 기댄다해도 수백년이 될 듯 싶다.

다만... 현대적 개념이라면... 그리고 한국적 상황에서라면...

다른 견해들과 각론이 있을 수 있으나 만화계 내외부와 일반이 동의하는 선에서 찾자면

1909년 대한민보 창간호에 수록된 이도영의 '삽화'를 들 수 있다.

대한민보 창간이념을 시사만평 형식을 빌어 밝힌 작품으로 시작된 이도영의 '삽화'는

창작방식, 표현형식, 제작 및 유통형식 등에 있어서 

현대적 개념의 신문연재만화가 지녀야할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는  연재 작품이다.

신문연재만화 그중에서도 시사만평은 신문의 역사성과 함께한다.

이른바 코믹스, 코믹북이라고 불리는 현대적 개념의 서사만화 역시

인쇄 창작물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이 같은 정치성이나 계몽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래서 곧 다가올 2008년 시사만화 100 년은 서사만화의 역사를 품고 있는 우리만화 100년이라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도 이를 기념하기 위한 집필 작업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전국시사만화가협회에서 '시사만화 100주년 준비위원회'를 발촉하며 깃발을 꽂았다. 


(관련기사 :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office_id=006&article_id=0000020155&section_id=102&menu_id=102 )


동지를 만난듯 반갑기도 한데... 한편으로는 아쉬움도 있다.

만화계와 미술계의 고민으로 '최초의 만화가 이도영 전'이 열리고 그에 대한 논의가 상당부분 진척되어있는 터에 

이도영의 역사성을 '시사만화'라는 장르로 국한시킨 듯한 인상이 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만화'의 역사성은 다른 곳, 또는 더 먼 곳에서 찾아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탓에 생기는 아쉬움이다.   

물론 이도영은 시사만화가라고 봐야지 서사만화가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근현대 만화의 역사와 만화의 현재적 맥락, 미래지향적 발전방향 등을 고려할 때

'시사만화'의 사회풍자기능과 '서사만화'의 감정정화기능은 각각의 특수성에 맞춰 발전됐다 하더라도

빼고 더할 것없이 '만화'라는 형식 안에 있는 한 몸이다.

즉, 최초의 만화가 이도영으로 부터 2008년 또는 2009년 6월을 정점으로 하는

'만화 100주년 기념사업 준비위원회'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만화연대 등 만화가 단체들이 참여할 예정이라고 하지만

준비위의 구성은 이른바 시사만화가들로만 구성되어 있어서 형제 중 한쪽만 부친을 기념하는 모양새이다.

최초의 만화가 이도영으로 부터 근현대만화 100년을 기념해야 한다.

그 자리에는 시사만화와 서사만화가 함께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한국만화가협회, 젊은만화가모임, 여성만화가협회 등 서사만화 중심의 만화가모임에서도 적극적인 참여의지가 필요하지 않을까. 

특히 인터넷이라는 대안언론매체를 통해 등장한 인터넷만화가, 웹툰작가들의 관심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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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seokhwan

만화평론가 박석환 홈페이지. 만화 이론과 비평, 웹툰 리뷰, 인터뷰, 보도자료 등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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