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본만화시스템의 온라인화에 박수와 충고를, 2003


낙후한 만화출판계의 전형으로 폄하됐던 대본만화계(일일만화 ; 만화방 내에서 유료 열람할 수 있도록 제작된 형태의 만화책 제작 유통시스템)가 인터넷을 통해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대본만화계는 출판만화계 전반의 장기적 불황과 함께 그 어느때보다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중이다. 이른바 코믹스판형의 만화를 소규모로 대여 유통시키고 있는 책대여점(또는 비디오 중심의 복합렌탈점)에 비해 만화방(대본소)을 중심으로 한 독점적 생산 유통 소비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 대본만화계는 나름의 수요공급 원칙을 유지하며 불황을 견뎌왔다. 그러나 출판만화계의 장기불황이 지속되고 피씨방 등이 대체 오락시설로 자리잡으면서 폐점 만화방의 수가 늘어나자 작품당 발행부수의 최소 생산 유지선이 무너지면서 심각한 차질이 발생했다. 


대본만화계는 전통적으로 20여 명의 거대 작가가 자웅을 다투고 많게는 40여 명의 작가가 활동해왔다. 이들 작가의 작품을 지역별 만화도서유통 총판에서 거래 만화방에만 독점적으로 유통 판매하면서 대본만화계의 독점적 유통 시스템을 구축해왔다. 즉 작가나 출판사는 특정 총판에만 도서를 공급하고 총판은 이를 만화방에만 판매해왔다. 다시말해 출판사는 총판에게 유통 독점권을 주고 총판은 만화방에 이를 팔면서 일반인이 만화방 이외의 장소에서 이 도서를 소비할 수 있는 방법을 원척적으로 차단해왔다. 상호간에 서로의 독점적 지위를 확보해주면서 수십년간 흔들림없는 비즈니스 툴을 형성한 것이다. 그러나 최근 이같은 상생 관계가 무너졌다. 

얼마전부터 만화방 운영자들은 인터넷서점 등을 통해 코믹스를 총판보다 싼 가격으로 구매를 하는가하면 새책에 준하는 중고 대본만화를 거래총판 이외의 총판 등에서 구매하기도 했다. 상품의 수급을 다른 출구를 통해 받을 수 있게된만큼 기존 도서유통총판은 절대적 지위를 확보할 수 없게 됐다. 막말로 총판이 상품을 제공해주지 않으면 장사를 할 수 없었던 과거의 정보 부재 상황이 아닌 것이다. 책을 찍어서 밀어 넣으면 사야했던 것이 과거의 만화방 운영자 신세였다면 지금은 작가들을 4대 메이저, 4대 마이너, 4대 마니아로 구분 발행작품의 전작구매, 1/2 또는 1/3 구매, 1/3 구매 또는 비구매하는 등을 운영자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됐다. 세상은 달라졌고 정보의 독점을 통해 형성했던 지위는 가장 저급한 수준의 것이 됐다. 이제 기존 도서유통의 흐름이 전면적으로 바뀌어야 할 시대가 된 것이다. 


현존하는 11~12 명의 대본만화계 작가들은 `시장의 규모에 따라서 생산량을 줄여야 기존의 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고 한결 같이 말한다. 즉 작품당 판매 수익이 적어졌으니까 작품 수를 대폭 늘려서 수익의 전체 폭을 유지하겠다는 식은 작품의 질을 하락시키는 요인이 되고 이 상황에 이 같은 전술은 `벼랑끝 전술`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상반되게 이른바 4대 메이저로 통하는 무협만화가들은 저마다 중국 태국 베트남 등지에 만화제작 화실을 차리고 최소제작비용으로 대량의 작품을 생산할 수 있는 라인을 구축했다. 총판과 맺었던 `게임의 법칙`을 거부했던 만화방 운영자들은 상품 생산자 입장인 작가(출판사)들의 이 같은 졸속 상품 생산에도 반발하고 있다. 일정수준 이상이 담보되지 않으면 그나마 있는 손님마저 붙들기 어렵게 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현 상황이 만화방 운영자들이 유통과 생산 주체를 압박하는 국면으로 볼 수도 있으나 꼭 그렇지만도 않다. 이미 생산주체들인 작가(출판사)들은 기존의 유통망에 대한 회의감을 숨기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속속들이 그 실체가 드러나고 있는 대본만화계 생산자들의 입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현재 활동 중인 대본만화계 작가들이 만우회(회장 박봉성)라는 이름의 친목단체를 조직하고 현 불황 국면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공동사업안을 구축했다. 그 공동사업의 실체는 기존의 독점적 도서유통 시스템 전체를 인터넷으로 옮긴 것이다. 즉 작가단체가 공동출자하여 회사를 설립(일명 `대한민국 만화 중심 주식회사`, 사진 www.comicslife.net의 대표이사와 박봉성 회장)하고 전 작가의 작품을 인터넷 서비스 한다는 방침이다. 이는 기존 인터넷만화서비스 업체의 사업성과를 통해 확인된 수익모델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핵심은 기존 인터넷만화서비스가 기 출판된 작품을 중심으로 했다면 이 회사는 이사 작가진의 신규 작품을 만화방에 준하는 규모로 생산해서 서비스하겠다는 것이다. 이 대규모 인터넷만화방은 이 회사의 대표사이트를 통한 개인판매와 포탈사이트를 중심으로 한 콘텐츠 유통이 이뤄질 계획이다. 

또한 기존 만화방의 개념을 피씨방으로 전환하겠다는 전복적 사업계획이 큰 축을 이루고 있다. 현 게임 중심의 피씨방을 대상으로 인터넷만화회원업소를 모집하여 정액방식 또는 이용시간방식으로 인터넷만화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기존 유통시스템에 대한 전면적 부정으로 이어질 것이고 이 드림컨셉의 완성과 성과는 오프라인 대본만화계 시스템의 와해를 바탕으로 한다. 반면 생산자 입장에서는 기존의 생산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마지막 카드가 될 수도 있다. 

대본만화계의 주독자가 30대 이상으로 점점 고령화되어가는 반면 10-20대 독자층은 코믹스와 일본만화에 빼앗긴지 오래이고 신규 독자층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오프라인에서 대본만화의 시대는 사실상 저물고 있었고 최근까지 명맥을 유지해 온 수준이다. 이제 그마저 여의치 않다는 것이 이들의 상황인식이다. 또 지금이 아니면 이마저 늦을 수 있다는 점에있어서 동감을 표한다. 


코믹스의 오프라인 시장이 대폭 축소되고 있는 상황이고 이에 반해 우리만화의 온라인화가 일정정도 성공을 거두면서 일본만화의 온라인 진출이 그 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 있어서는 일정수준 이들을 응원하고 싶다. 이들의 온라인 진출이 성공하게되면 일본만화의 진출이 급물살을 탈 것은 뻔한 일이다. 그러나 무주공산에 일본만화를 입성시키는 것보다는 이들이 기존의 생산시스템을 온라인으로 이관하게 되면 일정정도 이상의 대치국면이 조성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만화계가 풀 수 없었던 난제중 하나였던 대본만화계의 생산시스템이 온라인화되면 기존의 상품화방식과는 다른 긍정적 국면 전개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기존의 대본만화계가 우리만화의 악화 중 하나였음은 크게 부인할 수 없지만 전체를 부정하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대본만화계는 우리만화의 현대화를 견인한 거대한 흐름 중 하나이고 우리만화의 부정할 수 없는 힘이다. 이 힘이 스스로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는 것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리고 이들의 대응이 성공하기를 기대한다. 단 생산과 소비의 논리에만 천착한 형식의 졸속작품 양산 시스템이 재현되는 것에는 반대한다.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유통시스템을 통해 작가(출판사)가 총판과 만화방의 역할을 일원화할 수 있다는 것은 기존 유통시스템으로서는 이해될 수 없었던 부분이다. 즉 수익이 분산되는 시절의 생산논리에 급급한 졸속작품의 양산 계획이 있다면 이 부분은 전면 수정할 것을 요구하고 싶다. 물론 기존의 소비자들과 달리 인터넷소비자들은 이 같은 졸속작품 생산에 용인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총판과 만화방운영자와는 전혀 다른 절대자들이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코믹스팸닷컴, 2003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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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seokhwan

만화평론가 박석환 홈페이지. 만화 이론과 비평, 웹툰 리뷰, 인터뷰, 보도자료 등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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