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만화는 멀티미디어 시대의 언어, 문화콘텐츠 시대의 자원, 강원랜드, 2007.3.7

우리가 만화를 좋아한다고? 

일본의 한 인문학자는 ‘일본 사람들은 태생적으로 만화를 좋아 한다’고 말한다. 일본이 만화 강국이라는 것쯤이야 상식적인 이야기이다. 구미시장에서도 폭발적 인기를 누리고 있어서 일본식 만화를 뜻하는 ‘망가(manga)’라는 단어가 옥스퍼드 사전에 등록됐고 ‘대동아 망가 공영권’이 형성됐다는 저널 식 표현이 난무할 정도로 동남아 만화시장은 일본의 입맛대로 돌아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세계시장에서의 이 같은 성과는 물론 내수시장의 확실한 밑받침이 있어 가능한 것이다. 일본은 한 해 20억 권 가량의 만화책을 찍어낸다. 책이라면 없는 것이 없을 정도인 이 나라의 전체 출판물 중 1/4이 만화책이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독서열은 상당부분 만화책에 의한 것이다. 일본 인구가 1억2천 만 명 수준이니까 국민 1인당 17권 가량의 만화책을 구매하고 있는 꼴. 매년 개인소득이 가장 높은 10명 중에 만화작가가 서넛은 끼어 있다. 

만화소비력이 이쯤 되다보니 ‘태생적으로 만화를 좋아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전혀 우습게 들리지 않는다. 이를 우리의 경우와 단순 비교하면 이렇다. 남한 인구가 4천7백 만 명 수준이고 올해 출판통계에 의하면 4천2백 만 권 가량의 만화책이 출판됐다. 국민 1인당 1권 꼴이 안 된다. 수치만으로 본다면 우리는 태생적으로 만화를 싫어한다. 하지만 전체 출판량 중 만화책이 차지하는 비율은 35.9%로 일본보다 높다. 다시 말하자면 일반 도서를 일본보다 싫어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일반도서보다는 만화책을 더 선호하는 것도 사실이다. 

더군다나 일본의 만화시장이 판매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면 우리 만화시장은 대여(만화방이나 대여점에서 1권을 구매해서 여러 사람에게 빌려주는 형식)를 중심으로 한다. 대여시장의 규모를 출판시장의 4배정도로 추정하고 있으니까 실질적으로 회독율을 포함한다면 국민 1인당 5권 가량의 만화책을 소비하고 있는 셈이다. 이쯤 되면 우리도 태생적으로 까지는 아니지만 만화를 좋아한다고 할 수는 있겠다. 


만화가 교육상 좋지 않아서 재미있다고? 

만화에 대해서 많은 이들은 이 같은 말을 한다. ‘만화책을 보면 교육상 좋지 않다’ ‘애처럼 만화책을 보다니’ 등등등. 더 끔찍한 주장도 많지만 대부분 두 문장 안에서 확장되는 것이다. 만화책은 교육상 좋지 않게 폭력적이고 음란하다는 것이고, 만화책은 유치하고 천박하다는 것이다. 

만화책은 문장 중심의 책과 달리 즉시성이 강한 이미지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문장이 좌에서 우로 이동하는 규정된 시선의 흐름(시간, 역사)에 따라 논리화되는 구조를 지녔다면 만화는 칸(단, 면, 장 포함) 전체에 배치된 이미지를 통해 정황을 설명하는 구조를 지녔다. 그만큼 정보 전달력이 빠르기도 하지만 다소 정서 상태를 산만하게 할 수도 있거니와 논리적 사고를 막을 수 도 있다. 또 만화의 표현 양식적 특징인 단순 과장 경묘 풍자 등의 속성은 대상의 본질 자체를 왜곡시키는 것으로 자칫 그릇된 가치관을 형성하게 할 수 도 있다. 그리고 만화책 만화가 다루는 주 내용은 꿈 도전 성취 등과 깊숙하게 관련되어 있어서 다소 허황된 꿈과 성취과정을 보여준다. 대개 약자의 성취과정을 보여주는 통에 과하게 폭력적인 강자의 모습과 이에 응하는 반폭력이 행해지기도 한다. 음란하다고 논의되는 만화식 성표현물 역시 과장과 풍자의 속성 또는 꿈과 성취의 서사 구조 안에서 이해 될 수 있다. 

만화는 일상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사건을 의도한다. 이른바 만화적 일상이라고 불리는 사건은 비일상적이고 비논리적이어서 비현실적이다. 이는 현실에 대한 이탈적 상상력을 통해 이뤄지는 것으로 경험할 수 없는 세계에 대한 동경과 이에 대한 근미래적 구현의지가 바탕이 된다. 즉 지금은 일어날 수 없는 일이지만 언젠가는 가능할 지도 모르는 일과 전혀 그렇게 될 수 가 없는 까닭에 한번쯤 그렇게 해보고 싶은 일이 만화가 보여주는 것이다. 즉 해소성 대리체험의 역할이 만화의 순기능을 대표하는 것이라 하겠다. 

순기능과 역기능을 두부 자르듯 나눌 수 없는 것처럼 만화 전체가 좋고 나쁘고로 나눌 수도 없다. 그런 영화도 있고 이런 영화도 있는 것처럼, 그런 만화가 있고 아닌 만화도 있다. 만화의 속성과 서사구조를 원용하는 만화가 있는가하면 이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반만화도 존재한다. 다분히 교육적인 형식을 취하기 위해 탐구력 추리력 논리력 등을 함양할 수 있도록 만화의 속성을 적극 활용한 에듀-코믹스(Education Comics)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만화적 형식이 지닌 즉시성 역시 강렬한 정보전달 수단으로 시각문화 전반에 걸쳐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교육적으로 좋고 나쁘고, 때문에 재미있고 없고가 아니라 만화가 지닌 무한한 기능 중 어느 것을 가동 시켜 단일 작품을 만들어내느냐에 따라 그 역할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만화는 만화일 뿐이라고? 

크레파스나 색연필만 있으면 어디든지 낙서를 해대는 꼬맹이 시절부터, 활자로 꽉 찬 신문을 쓱 넘기다가 만화 면이 나오면 집중하기 시작하는 중년기까지. 만화는 생산과 소비, 응용과 활용에 동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벽 없는 표현수단이며 지적산물로서의 창작 또는 소비문화이다. 또한 현대만화는 콘텐츠 산업의 기반이 되는 자원이 되고 있다. 즉 한편의 원작만화가 캐릭터산업과 관계를 맺고 영화영상산업으로 발전하는 등 다양한 측면에서 문화산업적 영향력을 확대해 가고 있다. 이현세 허영만 천계영 등 국내 인기만화가의 작품만하더라도 영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 다양한 창작매체의 원소스로 사용됐고 다종의 상품군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매년 가장 영향력이 있었던 인물 10명을 선정해서 발표하고 있는 미국의 <타임>지는 직장인만화의 주인공 딜버트, 성장형 육성 대전만화의 주인공 피카츄 등을 그 해의 인물로 포함시킨바 있다. 허상의 인물이 실존하는 인물보다 정서적으로든 물질적으로든 더욱 강한 영향력이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세계를 무대로 뛰는 비즈니스맨들 사이에서는 그 날짜 신문에 실린 딜버트 만화를 모르면 대화가 안 될 정도라는 말이 나왔고, 전 세계의 가정에는 피카츄 관련 상품이 1개 이상 있다는 통계도 나왔다. 

국내의 경우 일본만화의 유행과 함께 일본식 의성어나 의태어 또는 번역 투 문장이 청소년들 사이에서 일상어처럼 쓰이는가 하면 일본애니메이션과 함께 건너 온 일본음악은 개방이전부터 낯설지 않은 문화로 인식되고 있다. 워크맨이라는 이름의 일본 소니사의 휴대용 카세트레코드는 일본 음악을 함께 가져오지는 못했다. 그러나 일본만화는 일본의 문화와 상품 일본식 정서까지를 함께 실어온다. 이는 월드컵이 우리 상품의 세계적 상품가치를 높여 논 것과도 같은 이치이다. 

최근 세계적으로 만화산업이 전년도에 비해 위축되고 있기는 하지만 게임 등 관련 산업의 발전은 만화적 이미지와 상상력을 제외하고 논할 수 없다. 만화 자체의 문화적 위상 또는 만화산업의 총규모 등과는 상관없이 만화는 문화와 산업의 시험대이고 첨병임에 분명하다. 해외에 자동차 1대를 더 파는 것보다 우리만화의 내수시장에 대한 경쟁력을 키우고 해외시장 진출을 도모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만화는 만화일 뿐 따라하지 말자’는 편협함을 버리고 만화의 경쟁력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생활미술처럼 생활체육처럼 만화는 이미 생활 속에 들어와 있다. 이를 부정하지 않는 다면 생활만화의 출현이 가능할 것이고 우리만화의 발전도 급진전 될 것이다. (끝)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강원랜드, 2002-11-09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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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 만화콘텐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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