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몬스터'를 통해 찾아보는 출판만화의 희망, 경기미디어, 2002.03.11



<몬스터>에서 찾는 만화의 희망 


우라사와 나오키의 공포스릴러 만화 <몬스터> 18권이 나왔다. 일본 발 만화출간 소식으로 아직 한국어판은 나오지 않은 상태. 하지만 벌써부터 이 작품의 출간소식이 각 언론의 만화면을 채우고 있고 별도의 만화면이 없는 매체에서도 해외단신으로 싫고 있다. 만화책 한권의 출간 소식이 이처럼 후한 대접을 받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꼭 찾아본다면 세상이 다 아는 일본만화 <드래곤볼>이 끝날 때. 너무 일찍 끝나버린 <슬램덩크>가 아쉬움을 두고 사라졌을 때 정도이다. 

90년대 출간을 시작한 두 작품은 한국어판이 소개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만화산업, 만화문화 등을 이끌었던 ‘트랜드 메이커’였다. 30여권에 이르는 작품이 연재되는 동안 눈덩이처럼 불어난 일반의 관심은 ‘완결작’ 소식을 대단한 뉴스로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그런 대접을 지금 <몬스터> 완결편이 받고 있는 것이다. 작품도 작가도 여전히 낯선 <몬스터>가 뉴스가 되는 이유. 거기에는 세계 만화계의 현재가 그대로 담겨있다. 


세계 만화 생산국의 마지막 히트상품 


<몬스터>는 1995년 연재를 시작한 작품이다. 동아시아권 만화계를 점령한 일본만화는 이 시기를 전후로 미국과 유럽으로 진격한다. 미국은 1권에 20페이지 남짓한 올컬러판 잡지형식의 만화(코믹스트립)가 주류를 형성하고 있었고, 유럽은 양장본의 초호화판 만화(방드데시네, 앨범)가 주류였다. 권 당 200페이지 분량에 30여 권이 훌쩍 넘는 일본만화는 이들이 알고 있는 만화의 형식을 전면 수정한다. 이 시기를 상징하는 작품이 <드래곤볼> <슬램덩크> <캠퍼스블루스>(고교생들 사이에 일진회 파문을 일으켰던 작품의 해적판 출간명)였다. 그러나 현재 일본 내에서 만화시장은 바닥으로 추락하고 있다. 앞선 ‘메가 히트 작품’들의 연재가 끝나고 완결작이 나오면서 독자들이 만화책을 놓기 시작한 것이다. 젊고 유능한 인재들이 만화계로 오지 않고 게임계로 갔고 만화의 독자들 역시 순식간에 게임 유저로 탈바꿈했다. 1천만부를 팔던 잡지는 신화만을 남긴 채 고작 3백여만부를 파는 수준이 됐다. 세계의 만화계가 여전히 일본만화의 그늘 아래 있는 가운데 세계 만화의 생산국에서 주력 상품이 단종 돼버린 꼴이다. <몬스터>는 당시의 신화를 유지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작품 중 하나이다. 


소수시장에서 터진 대박 


동아시아권을 제외한 서구 시장에서 일본만화를 찾는 독자가 많아졌지만 전체를 대표할 정도는 아니다. 소수집단의 광적인 관심에 의한 것으로 이른바 마니아문화 중 하나. 만화라는 매체 자체가 그렇다. 남녀노소 누구나 만화를 즐기지만 만화책 자체를 즐기는 것은 아니다. 그처럼 우리도 신문이나 잡지의 만화면, 방송의 만화 시간대, 만화적 이미지를 부착한 상품, 만화적 발상의 무엇 등을 선호할 뿐이다. 만화계의 중심으로 여겨지는 만화책 시장은 극히 소수의 마니아 층에 국한 돼있다. ‘만화만 보지 말고 공부 좀 해라’라는 관용적 표현의 앞머리가 영화 게임 인터넷 등으로 바뀐 것도 오래 전이다. 일본 만화를 대표하는 장르는 학원 액션 환타지 순정 성애만화 등. 이 틈새를 이루고 있는 것이 교양주의적 입장에서 등장한 전문소재만화이다. 일본에서는 요리 아르바이트 다이어트 운전 바둑 등의 전문소재만화가 취미실용서의 역할을 대신하지만 만화 속의 마니아 시장에 불과하다. 허리우드 영화에서 범죄스릴러 장르는 주류이지만 만화에서는 비주류. <몬스터>는 의사 주인공을 중심으로 의술 법의학 범죄심리학 등을 일별하고 있는 전문소재만화로 소수 장르에서 대박이 터진 꼴이다. 


바닥의 탄력을 이용하는 개척자 필요 


지금 세계의 출판만화계는 바람 앞의 촛불마냥 위태롭다. 미국만화계는 중고만화시장과 고가의 골동품만화 시장이 커지면서 새로 나온 책을 사지 않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일본만화계는 유능한 창작인력들이 게임쪽으로 대거 이탈하면서 경쟁력있는 생산체제 구축에 실패했다. 일본만화를 수혈 받아 지켜왔던 국내 만화계의 사정은 가계의 문화소비 감축과 맞물려 급락을 가속하고 있다. 세계만화계는 이런 정황을 두고 시장이 바닥을 쳤다고 본다. 더 이상 떨어질 때가 없다는 결론이다. 즉 바닥에 주저앉을 것이 아니라 그 탄력을 이용하는 개척자를 요구하고 있다. 세계만화의 신화로 기록될 일본만화의 호황기가 끝났다. 그 마지막을 장식한 작품은 비주류 장르의 걸작이고, 천재적인 작가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치밀한 프로덕션 기획에 의한 것이다. 벽도 무너졌거니와 타고난 것도 아니라면 새로운 시도와 노력만 남는다. 남의 집이 잘되고 못 되고에 따라 젓가락 춤을 출 것이 아니라 우리만화계가 스스로 출발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아야 한다. <몬스터>는 한 사람이 아니다. 악인은 선인을 동반하고 다니고 몬스터는 두 사람이다. 불황과 끝은 호황과 시작을 전제로 한다. 우리 출판만화계가 새로 일어설 때다. 


(글) 박석환 


<몬스터> 그리고 우라사와 나오키 


주인공 덴마는 독일의 뇌 외과의학계에서 촉망받던 일본인 의사이다. 어느 날 시장과 요한 남매가 함께 응급실에 찾아든다. 덴마는 ‘시장이 먼저’라는 원장의 명을 거부하고 요한 남매를 우선 수술한다. 갑자기 출세 길이 막힌 덴마. 얼마 후 원장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용의자로 지목된 덴마는 도망자가 된다. 범인은 요한. 자신의 출세 길을 내 던지고 구해낸 요한이 몬스터임을 알게 된 주인공은 그를 추적한다. 탄탄한 스토리라인과 스티드한 사건 전개로 서사적 공포와 재미를 녹여낸 이 작품은 작가에게 ‘데스카 오사무 만화상’을 안겨준 역작이다. 1960년 오사카 출생인 작가는 경제학도 출신으로 소재주의 원칙에 충실한 수준작을 다수 발표했다. <야와라> <마스터키튼> <20세기 소년> 등으로 국내에서도 탄탄한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다. 최근 일본에서 출간된 이 작품의 완결편은 오는 4월 한국어판이 나올 예정이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용인신문, 2002-03-11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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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평론가 박석환 홈페이지. 만화 이론과 비평, 웹툰 리뷰, 인터뷰, 보도자료 등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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