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대중문화 속 캐릭터, 2000


>> 첫째글


명함으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캐릭터의 매력


변진섭의 노래 중에 이런 대목이 있다. 

“당신의 장난감 당신의 인형이 될 수 없는 나는… …”

노랫말 중 ‘장난감’과 ‘인형’이 뜻하는 것은 아마도 저처럼이라도 사랑하는 이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머무르고 싶은 화자의 심정일 것이다. ‘하다 못해 미물인 장남감과 인형도 그 사람에게 그처럼 존귀한 것으로 있을 진데,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이렇듯 가슴 절이고 있는 나란 놈은 무엇이란 말인가!’라는 투의 고뇌쯤 될거다. 그 장난감과 그 인형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대충 요즘 젊은이들이 가방 등에 달고 다니는 악세사리쯤으로 생각된다. 나는 언젠가 가방보다 더 크게 보이는 인형을 달고 온 여자동료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은 적이 있다. 별일도 아니지만 왜 그렇게 큰걸, 또 왜 하필 그 인형이냐고 물었다. 동료는 ‘예뻐서’, ‘독특해서’라고 말했다. 확실했다. 심미적으로, 감정적으로 예쁘거나, 독특한 것은 호감이 간다. 그리고 그 예쁨과 독특함은 소유하고 싶어진다. 또 그것의 예쁨과 독특함은 그대로 소유자에게까지 전이된다. 소유자까지 예뻐지고, 독특해지는 것이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에 친구들과 숨어서 담배를 피기 시작했다. 당시 주윤발과 유덕화 등 홍콩영화의 스타들은 우리 또래들의 우상이었다. 영화 중에서 두 배우의 멋스러움은 담배를 피는 모습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그래서 당시 담배보다 소중했던 소품은 성냥이었다. 가스라이터가 나이트클럽 찌라시보다도 흔했던 지라 성냥은 그 나름대로 독특한 소품이 되곤 했다. 흔히 ‘따까리’라 부르곤 하던 이 성냥은 당시 최고의 장난감이었고, 인형이었다. 기회만 생기면 성냥으로 할 수 있는 갖가지 묘기들을 연출하느라 바빴고, 심심하면 그 묘기들을 수련하기에 바빴다. 그 외에도 주윤발을 주윤발 답게 기억하게 하는 것들로는 올백머리, 롱코트, 쌍권총 등이 있다. 주윤발이 캐릭터라면 주윤발이 지니고 등장했던 것들은 캐릭터상품이라고 볼 수 있다. 즉, 내가 소중하게 간직하고 다니던 ‘성냥’은 당시 최고의 캐릭터 상품 중 하나였던 것이다. 아무도 거기에 상업적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에 더군다나 값진 캐릭터 상품이었다. 그 뒤 나는 지퍼라이터와 럭키스트라이크라는 담배를 애용했다. 그 역시 드라마가 있는 상품이었고, 캐릭터 상품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변진섭이 원망스럽게 바라보던 장난감과 인형을 보자. 그 장난감과 인형을 달고 다니는 여성에게도 드라마가 있을 것이다. 아니라면 최근의 장난감과 인형, 캐릭터 상품이 그렇듯 태생적으로 드라마를 지니고 있을 것이다. 여성의 장난감과 인형은 사랑하는 다른 남자가 주었을 수도 있고, 자신이 선택한 것일 수도 있다. 자기를 중심으로 형성됐건, 장난감과 인형을 중심으로 형성됐건 어느 쪽이든 드라마가 있다. 그 드라마는 개인적인 빛을 지니기도 하고, 대중적인 빛을 지니기도 한다. 사람들의 손가락에 끼고 있는 반지는 가장 개인적이면서도 대중적인 드라마를 읽을 수 있는 기호가 되고, 스스로의 캐릭터를 알리는 방법이 된다. 반대로 일반적으로 소비되는 캐릭터 상품들 역시 존재한다. 하지만 그 역시 소비의 상황을 필연적으로 드라마와 연결시키는 역할을 한다. 가령 나는 최근에 유행했던 포켓몬스터가 그려진 빵을 사먹었다. 나의 캐릭터와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었지만 ‘삼촌도 포켓몬스터  스티커 모아’라며 조카가 동질감을 느껴왔다. 

캐릭터, 캐릭터 상품은 알림의 신호이고, 명함으로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역할을 한다.  단언하건데 변진섭의 노랫말 속 화자는 매력적인 캐릭터가 없었을 것이다. 있다면 그렇게 멍하니 캐릭터를 지닌 여인을 바라보는 캐릭터가 된다. 그가 조금만 더 자신의 캐릭터 관리를 했다면 그 여성의 가방에 달린 장난감이나 인형은 그 자신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둘째글


정보마인드보다 캐릭터마인드가 중요하다


캐릭터는 그 자체로 매력적이다. 그것이 가상의 인물을 뜻하는 까닭에 더욱 신비감을 지니기도 하지만, 그 가상의 인물이 보편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 두는 까닭에 더욱 흥미롭다. 흔히 ‘누구누구처럼’, ‘어디에 나오는 무엇처럼’이라는 이야기는 명백히 캐릭터가 만들고 있는 문화가 된다. 이를 읽어내고, 자신의 것으로 수용할 수 있는 이들은 스스로 드라마를 지닌 사람이 된다. 

나는 아직 정동진을 가보지 못했다. 드라마 <모래시계>의 오프닝타이틀에서 고현정의 긴머리를 휘날리게 하던 그 바람을 맞아 보지 못했고, 그 이후 정동진을 찾는 무수한 인파들이 그 바람을 맞고 갔다는 이야기만 들었을 뿐 진짜 고현정과 비슷하게 머리칼을 휘날리고 갖는지도 보지 못했다. 그리고 그곳에 급기야는 세계 최대규모의 진짜 모래시계가 만들어졌다는 것도 이야기로만 확인했다. 동해의 촌구석일뿐이던 정동진역이 각광받는 관광 명소로 탈바꿈 한 것은 당연히 드라마 <모래시계>의 인기 덕이다. 하지만 고작 몇 씬이 전부였던 그 곳이 마치 <모래시계>의 배경처럼 회자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마도 극중 고현정이 지닌 드라마, 고현정이 만들어 논 이야기가 주효했던 것이 아닐까? 

지금도 간혹 혼자서 바다를 보고 싶어하는 여성과 혼자서 산을 오르고자 하는 남성들을 본다. 바다에 가면, 산에 가면 도대체 무엇이 있단 말인가? 재미있게 놀려면 동행이있어야 할 것이고, 그도 아니라면 따듯할 때나 갈 일이지. 약이라도 준비해갔다면 추운게 싫어서 홀라당 먹어버릴 것만 같은 겨울바다, 겨울산을 찾는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하지만 금방 죽기라도 할 것 같은 그 사람들은 겨울바다, 겨울산을 거쳐 다시 돌아온다. ‘추워서 더 못있겠어’라며 시시껄렁한 농담도 잊지 않는다. 그들은 왜 그곳에서 살아올까? 그 전보다 더욱 강력한 기운을 얻고 올까? 

아마도 각자의 뇌리에 남겨진 드라마 때문일 것이다. 습관적으로 고독해진 주인공을 데리고 바다를 향하고, 산에 들어가게 만드는 영화감독이나 드라마 PD의 상투성을 욕하지만, 또 그렇게 제자리로 데리고 오는 그들에게 고마움을 표해야 한다. 그들은 수많은 상황, 지구상에서 인간에게 벌어질 수 있는 모든 일들을 가상하고 그 일을 지닌 주인공을 끌고 그곳으로 간다. 그리고 나름의 해답을 찾아서 다시 돌아오게 한다. 리턴하는 것이다. 그렇게 그들도 리턴한다. 아윌비백을 외치던 터미네이터처럼 그렇게 더욱 강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그럴 수 있는 힘은 그들이 캐릭터 마인드를 지니고 있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바다를 찾는 사람의 캐릭터, 그리고 그 캐릭터가 발생시키는 소품들 또, 보이지 않는 무엇들을 자신의 생활에서 적극 활용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기만의 또 다른 드라마를 만들어 가기 때문이다. 

정보마인드가 부족한 사람은 21세기에서 살아남기 힘들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난처한 사람들은 캐릭터가 없는 사람이다. 캐릭터마인드가 없는 사람들은 캐릭터로 무장한 도시에서, 캐릭터로 자신을 조정하는 사람들 속에서 살아있어도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다. 


>> 셋째글


캐릭터엔 캐릭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다치 미츠루는 대단한 이야기꾼이면서 천상 만화쟁이이다. 이 작가의 작품 [터치]는 어린  중학생들의 연애심리를 공식적인 싸움판인 야구장을 통해 풀어냈다. 이현세의 전매특허쯤으로 생각하기 쉬운 까치, 동탁, 엄지의 삼각관계. 이 부분에서 당연 톱클래스로 뽑힐만한 작가가 아다치 미츠루이다. 

당연히 이기는 게임은 될수록 멋있게 이기게 하고, 질 수밖에 없는 게임은 질 듯 말 듯 이기게 하는 재주와 뻔할 뻔자로 속 끓이며 진행되는 삼각관계에 독자들은 투자한다. 영화와는 달리 출판만화는 1회 지불로 모든 게 끝나지 않는다. 보통 인기작품의 경우 30여 권에 달하는 방대한 량이 되는 경우가 흔하고, 첫 작품에서 끝 작품이 나오기까지의 기간도 3년을 훌쩍 넘는다. 즉, 한번 제대로 맛을 들이고 나면 돈도 돈이지만 감질 맛 나게 끝나버리는 책을 부둥켜안고, 다음 편을 기다리며 애간장 타는 경험을 3년 간은 해야된다. 그래서 영화관람이 1회 성 소비라면 출판만화의 첫 번째 권을 보는 것은 투자개념에 더 가깝다. 만화독서의 경험이 많은 사람들은 그래서 더욱 신중하게 작품을 선정한다. 그리고 1,2,3권 정도를 읽으면서 우선투자를 고려하고, 이 작품을 완전히 소비해야 할지를 고민하게 된다. 독자들은 될 수 있으면 빨리 작가의 알토란같은 줄거리(물론, 줄거리나 구성만이 만화를 읽는 재미의 전부는 결코 아니다)를 뺏어 먹으려한다. 작가 입장에선 끝까지 지켜야 하지만, 독자입장에서는 될 수 있으면 빨리 얹길 원한다. 그렇다고 질질 끌면 또 끈다고 떠나 버리는게 독자다. 그래서 작가는 독자들에게 끊임없는 즐거움을 선물해야 하고, 이 줄기(작품)에 아직 단물이 많음을 넌지시 알려줘야 한다. 그런 재주, 독자들이 투자를 고민하는 걸로만 30여 권, 아니 50권까지도 끄덕없이 끌고 갈 작가가 바로 아다치 미츠루이다.

작가의 이런 힘은 역시 등장인물들의 감정 조율과 탁월한 심리묘사로부터 시작된다. 흔한 주제에 흔한 인물설정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인간미 넘치고 터프한 사내와 칼 같이 냉정한 사내, 그리고 그 둘을 조율하는 얄미울 정도로 영악하지만, 오히려 부러운 운명을 타고난 아름다운 여주인공으로 읽히는 여자의 이야기. 먼지냄새 풀풀 나는 이런 설정은 이제 아침드라마에서도 써먹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역시 재료보다는 요리사의 문제이다. 이미 너무 흔하게 고정화된 이 캐릭터들에게 작가가 생명력을 불어넣는 방법은 다름 아닌 연출력이다. 한 템포 느리게 펼쳐지는 그의 연출방법은 오묘한 뒷맛을 간직하게 한다. TV CF의 한 장면처럼 이미 지나간 사람에게서 야릇하게 느껴지는 향수 내음 같은 느낌. 작가는 이 공인된 자기만의 연출법을 통해 캐릭터 속의 또 다른 캐릭터를 끄집어낸다. 

‘이 사람은 여기서 이렇게 할거야’가 독자가 믿는 캐릭터고 등장인물의 관성이다. 그리고 작가는 자신의 캐릭터에게 그처럼 움직일 것을 명령한다. 모두가 원하는 것처럼 결정된 순간 캐릭터는 ‘나도 이럴 수 있었는데’하면서 자기가 지닌 캐릭터성을 부정하고 나선다.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야’라고 쉽게 결정 내린 경우, 그리고 ‘저 사람이 갑자기 왜 저러지’하면서 묘한 배신감을 느낀 경우. 작가는 캐릭터에게도, 고정화된 주인공에게도, 그리고 그를 보고 있는 독자들에게도 자신을 부정하면 행복해질 수 있음을 살그머니 짚어준다. 개그맨 전유성의 주장처럼 ‘조금만 비겁해지면 인생이 즐거워진다’.

이 작품에서 고민하는 두 명 또는 세 명의 캐릭터들이 그렇다. 별로 세심하지 않고, 야구와 우정, 의리 같은 것이 무엇보다 소중한 주인공 히로. 늘상 같이 서있었기 때문에 마주 볼 기회가 없었고, 그래서 그것이 사랑인줄 몰랐던 히로와 히카리. 그 사이에 매사가 진지하고, 철두철미한, 야구보다는 지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히로와 단짝이었던 히데오가 들어선다.

히로의 첫사랑은 히카리, 히카리의 첫사랑은 히데오. 일단 두 명의 남자에게 주어진 캐릭터는 너무도 확실해서 세 사람의 사랑싸움 같은 것은 기대도 못할 것 같다. 여자주인공 역시 히로는 친구, 히데오는 연인으로 명확하게 구분한다. 

작가의 역할은 자신의 캐릭터(타고난 품성, nature)로 인해 빼지도 박지도 못하고, 그저 고교시절의 한때를 보내야 할 세 사람을 흔들어 놓는 것이다. 너무 자연스럽지만 상대방에게는 묘하게 이해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내는 일이 작가의 몫이다. 물론, 깜직할 정도로 예쁘고 수줍게 자신의 캐릭터(덕성, moral character)를 부정해보는 정도에 그치고 만다. 마치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한 때처럼 그렇게 가장한다. 

허리우드 영화 [폴링다운(?)]에서 평범하기만한 회사원이(마이클 더글라스 분) 갑자기 총을 들고, 한국인 상점을 공격하더니, 급기야 총격 탈취 납치 도주 등 대형 액션을 펼쳐 보인다. 그 이유는? 평범해서 짜증스러운 일상을 보내는데 우연치않게, 업친데 덥친격으로 자신에게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련의 사건들은 이 남자가 지닌 보통사람이라는 캐릭터를 뒤엎어 버리고, 잔악무도한 도시의 테러리스트로 분하게 만든다. 최악의 상황이 되풀이되지만, 그 이전이라고 해서 최악이 아니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래서 별로 후회도 없다. 어쩌면 아다치 미츠루의 작품을 놓지 못하는 것은 이 부분, 세 명의 주인공들이 자신의 캐릭터를 벗어 던지고 어떻게든 행동해야 할 그 부분을 보고 싶어서 일 것이다. 


>> 넷째글


캐릭터는 캐릭터를 버리면서 성장한다


작품 속의 캐릭터는 작품의 초기설정을 통해 타고난 품성을 지니게 된다. 그것은 주변의 등장인물에 의한 평판으로 만들어지기도 하고, 작가의 의도에 의해 독자에게 직접적으로 전달되기도 한다. 작가는 주인공의 캐릭터를 만들면서 새로운 캐릭터, 그와 구분되는 상반되는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고심한다. 그렇게 작품 속의 인물들은 두부 자르듯 명확하게 자기만의 성격을 지니게 된다. 그러나 작품이 진행되면서, 작품 속에서 등장인물들이 성장해가면서 이것은 이야기의 재미를 위한 장치로 활용된다. 타고난 성품이 변하지 않더라도 내외적 환경에 의해 사람은 달라지게 마련이며, 작가는 이를 극적으로 활용한다. 남과 분명히 달랐던 개인적 특징(individuality)을 작품 속의 외적인격(persona)으로 만들고, 내적인격의 새로운 출현을 시도한다.

그래서 캐릭터는 캐릭터화된 장치에서 자유로워지고, 극의 긴장과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간다. 우리가 손가락질하며, 죄없는 철새를 끌어들여 비판하는 정치인들. 당적 바꾸기의 명수들도 마찬가지다. 나처럼 정치에 둔감한 사람들이야 별 상관없지만 긴급한 상황에 자기편이 한 명 늘었다고 생각해봐라. 그것도 적지에서 건너왔다면. 이보다 극적이고 새로운 긴장을 만드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캐릭터 속엔 꼭 캐릭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너 하나도 변하지 않았구나!’라면서 반가워했다간 큰 코 다친다. 만나지 않는 시간동안 변신하고, 변하려고 노력한 시간이 얼마인데 고작 그런 말을 듣는가? 친구는 한참 동안 술을 마시고 이내 변신한다. 자신의 변화를 봐주지 못하는 친구에게 ‘사실은 나 이렇게 변했어!’라고 행동으로 보여준다. 또, 캐릭터는 꼭 한가지 캐릭터만 갖고 있지도 않다. 시시 때때로 인격이 변하는 사람들을 다중인격자라고 말하면서 정신병자 취급하지만 사람들은 모두 여러 가지 인격을 지니고 산다. 108 요괴정도는 되지 않더라도 18면상 쯤은 된다. 나이를 먹을수록 그 인격의 수도, 그 인격의 성질도, 말 그대로 격도 다양해질 수밖에 없다. ‘어디에 있건 자신의 모습을 지켜라’라는 말의 금언은 잊어버리는 것이 속편하다. 

비즈니스맨들이 협상을 할 때 사용하는 전략을 ‘카드’라고 한다. 무수한 전략, 무수한 카드 중 한 장을 들이민다는 소리다. 이것이 꼭 비즈니스 관계에서만 통용되는 것은 아니다. 캐릭터 역시, 사람 역시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다. 만나는 사람에 따라, 자신이 속한 부류나 장소에 따라 적당한 카드를 내민다. 물론 카드를 내는 본질적인 성격도 있고, 습성도 있다. 그것이 곧 그 사람의 캐릭터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18면상을 상대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안까지 헤쳐보진 않는다. 주변에서 충고를 할 때 ‘내가 너를 아는데’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이처럼 자신있게 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나는 당혹감을 느낀다. 나도 잘 모르는 나를 알고 있다니? 충고를 듣다보면 고맙다는 생각보다 화가 난다. 몇 년 동안 나를 지켜본 사람이 고작 나에 대해서 이만큼 알고 있는가! 또는 나를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어떻게 그렇게 자신있게 사람을 단정짓는가! 등등. 하지만 그땐 이미 늦었다. 이 사람은 내가 보여준 만큼 나를 안다. 사건 추적 프로그램에서 도망자를 찾기 위해 주변사람들에게 평판을 수집하는 것을 보면 대개 사건을 벌 일 만한 사람으로 정리되는 경우가 많다. 역으로 도망자를 추적하는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을 떠올려 보자. 도망자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수집한 정보, 주변사람들의 평판은 제 각각 다르게 나타난다. 즉, 캐릭터는 변덕쟁이이고, 변신술사이다. 캐릭터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변덕을 부릴 때 더 멋스러워 질 수 있다. 자기답지 않다, 너답지 않다는 틀에 박혀서 움직이지 못하는 때 캐릭터는 고통 받는다. 그래서 캐릭터는 자신의 알을 깨기 위해, 자신의 그릇을 넘기 위해 고뇌하게 된다. 그렇게 고뇌의 과정을 거치고, 언제라도 사용 가능한 카드들, 새로운 일면들을 만들어 가는데 성공하는 것이 진짜 캐릭터다. 캐릭터는 캐릭터를 버리면서 성장하도록, 사람은 자신의 과거를 발전적으로 부정하면서 성장하도록 프로그램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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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seokhwan

만화평론가 박석환 홈페이지. 만화 이론과 비평, 웹툰 리뷰, 인터뷰, 보도자료 등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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