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만화영상진흥원을 떠났다, 2013.02.08

(철지난 이야기이지만 기록차원에서 몇자 적어둔다. )

2012년 11월6일~11일까지 진행된 일본 돗토리국제만화가대회에 참가했다. 이사장님, 원장님 이하 진흥원의 많은 인원이 참가해 개최지원 업무를  수행하고 복귀했다.

 

11월 12일 복귀한 진흥원은 어수선했다.


국민권익위에 모인사의 개인비리와 관련 된 내용 등으로 제보가 접수 됐다고 한다. 이에 따른 조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와 관련 당시 모시던 원장님이 11월 14일 사표를 제출했고, 12월 5일 이사회는 사표 수리 대신 해임을 결의했다. 이사회 후 이사장님도 사의를 표했다.

 

혼란한 상황이었다. 2012년 예산 사업의 완료관리가 되어야 했고, 2013년 사업의 예산신청과 심사를 받아야 했다. 앙굴렘한국만화특별전이 추진되고 있었고 문화부의 만화산업중장기계획도 출발을 준비하고 있었다.

 

연말연시. 대통령선거. 매일 서너 건의 행사들이 줄지어 진행되던 터였다. 그 때문이었을까. 숨쉴틈없이 바쁘던 그 때. 조직의 팀장으로서 자중하고 있어야 했는데 12월 13일 밤 여러 사람들과 함께 한 술자리에서 잘 못 된 언행으로 또 하나의 혼란을 만들고 말았다.

 

예고된 것과 같이 12월 26일 이사장님 퇴임식이 개최됐다. 이사장님은 모두가 고개를 저었던 진흥원 초대 이사장 자리(월급 한 푼 없는 명예직이다)에 올라 '만화전문기관'으로서의 위상 확보와 역할 수행에 매진해 오셨다. 남아있는 과제가 산적해 있었고 아쉬운 부분이 있었지만 사퇴 결심을 돌릴 수는 없었다. 참혹한 상황이었다.


물론, 그 상황에서도 당해 사업을 정리해야 했고 차기년도 사업을 수립해야 했다. 연말연시 진흥원 업무를 일단락하고 2013년 2월 8일 자로 사표를 제출했다. 홀가분한 마음도 있었다.

 

2009년 2월 진흥원 개원을 준비하면서 합류했으니 만4년. 부천만화정보센터 만화규장각팀 차장으로 입사해서 2009년 10월 한국만화영상진흥원 개원과 함께 콘텐츠비즈니스 팀장으로 발령, 문화부의 만화리메이크사업, GDCA의 경기만화애니메이션지원사업을 추진했고 2010년에는 디지털만화유통지원플랫폼구축사업을 신설하고 국비 예산을 유치하여 사업을 진행했다. 2011년에는 부장으로 진급했고 전략기획팀장으로 발령, 글로벌코믹프로듀싱 사업을 신설하고 예산 유치에 성공하기도 했다.

 

좋은 일도 굳은 일도 많았다.

무엇보다 사람들과의 관계는 기쁘고 힘이 되기도 했지만 또 정반대편에 있기도 했었다.

 

진흥원 입사 시 이루고자 했던 것은 한국만화의 디지털화, 글로벌화, 융복합화였다. 

디지털화와 글로벌화 관련 사업은 출발시켰으나 융복합화 사업은 개념도 전하지 못하고 자리를 뜨게 됐다. 이 부분은 꽤 오랫동안 아쉬움으로 남을 것 같다.

 

이사장님의 취임과 퇴임을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것 정도가 위안이 될까.

많은 것을 얻었고 또 그만큼 잃거나 내려놔야  했던 시기였다.

물론, 그 전후의 기간 동안 많이 고민하고 많이 아파하며 조금은 성장했을 것이라 믿는다. 다 하지 못한 일은 천천히 한 걸을 씩 해나갈 것이다.

 

다 이해되지 못한 일은 온전히 내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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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 만화콘텐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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