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쿼터스, 트랜슈머 시대의 미디어와 만화소비, 2007.03.30


80년 대의 만화방을 생각해본다. 

학교에서 꽤 떨어진 어디쯤엔가, 버스정거장 근처의 어디쯤엔가. 한권에 얼마씩을 내거나 시간당 이용료를 지불하고 앉아 있던 그 곳. 

지저분했지만 푹신한 쇼파가 있었고 음료수나 라면이 있었으며 수줍게 담배를 피어 물을 수 있었던 그 곳.  

비디오도 있었고 슬롯머신게임기도 있었던 그 곳.

하루가 멀다하고, 날이 새도록 그 곳에 있었던 나는 무엇을 얻으려 했던 것일까. 

만화작품을 읽고 감동을 얻기 위해서? 

극화의 전성기에 만화가들이 들려주는 과잉낭만의 서사를 이해하고 즐기기 위해서? 

나는 그곳에서 온전하게 만화작품을 읽었던 것일까.  


90년 대의 만화대여점을 생각해본다.

학교 앞에도, 집 앞에도 눈만 돌리면 있던 그 곳. 심지어 집 안까지 배달도 해주던 그 곳. 한권에 얼마씩을 내고 빌려가서 읽을 수 있던 그 곳. 잡지책도 빌려주고, 소설책도 빌려주고 얼마가지 않아서 게임씨디와 비디오테잎까지 빌려주던 그 곳.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면 어김없이 들려서 누구누구의 신작과 누구누구의 새로나온 연재작 각 1권씩과 신작 비디오테잎까지. 가방 한가득 볼거리를 챙겨 들어오게 했던 그 곳. 다음 날 돌려줘야 하는 신작 비디오를 보고나서 잠들기 전까지 만화책을 읽게 했던. 그러다 아침이면 다 보지 못한 만화책을 가방에 챙겨 버스안에서 읽고 교실안에서도 읽고, 짬만나면 읽게 했던... 그런 꺼리들을 빌려줬던 그 곳. 

그 곳에서 내가 얻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반복적인 학습효과를 연출하며 만화의 상업화를 이룩해낸 그들의 전략을 분석했던건가? 그러기 위해 그토록 집착하며 진전된 이야기를 찾아나섰던 것일까?

내가 그곳에서 온전하게 만화작품을 보기나 한 것인가.

만화방의 공간개념과 만화대여점의 이동개념

다시 생각해본다. 내가 만화방에서 만화작품을 즐겼던 것도 사실이지만 나는 만화방이라는 공간을 즐겼었다. 숨어있기 좋은 그 공간에서 사춘의 허기를 채웠던 것이다. 그런 공간에 꼭 만화책이 있지 않았더라도, 그 책에 담긴 내용이 꼭 만화작품이 아니더라도 나는 그런 공간을 찾았을 것이다. 적당한 이탈과 휴식을 취할 수 있던 공간이 그 시절의 내게 필요했던 것이다. 

80년대의 만화방이 휴식처로서의 공간을 제공했다면 90년대의 만화대여점은 휴게도구로서의 기능성을 제공했다. 내 경험에 국한된 것일지 모르나 90년대의 사람들은 더이상 한 공간에 오래 머물 수 없었다. 학생, 직장인, 주부 등등. 모든 사람이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했고 이동횟수와 시간도 길어졌다. 이동 중의 시간을 줄여주는 것은 운송수단의 고급화가 아니라 운송 중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지하철을 중심으로 스포츠신문이 활개를 쳤고 서점시장에서는 작은판형의 책과 함께 어학도서가 베스트에 올랐다. 지하철 버스 등의 광고시장도 큰 폭으로 성장했다. 내 경우 그 이동시간을 채워줬던 것이 만화대여점에서 대여한 만화책이었다. 때때로 무협소설이나 판타지소설이 내 가방의 한 공간을 채우기도 했지만 20페이지 이내에서 한 회 분량의 에피소드를 제공하는 연재만화의 출판본을 읽는 것이 가장 매력적인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동 중의 거리감과 가는 시간의 허망함을 달래줄 수 있는 무엇이 있었다면 그것이 꼭 만화대여점의 만화책이 아니어도 괜찮았을 것이다.    

2000년 대의 온라인만화방에서 다음 세대의 만화 소비 방식을 생각해 본다

인터넷통신이 가능한 컴퓨터가 전국민이 한대씩 지니고도 남을 정도가 됐다. 매일 인터넷에 접속하는 사용자수도 경제인구의 규모를 넘어섰다. 이제 인터넷은 사람들의 하루를 여는 미디어이다. 인터넷 접속 기능을 지닌 휴대폰의 보급도 이 수준을 넘어서자 명실공히 유무선인터넷미디어 세상이 열렸다. 여기에 방송과 통신의 개념이 융합되면서 DMB, Wibro 등의 신기술이 휴대용 미디어와 함께 소개되고 있다. 그야말로 언제 어디서나 어떠한 도구를 통해서건 인터넷과 접속할 수 있는 환경이 됐다. 숨어있기 위해서, 이동중의 따분함을 달래기 위해서 저 먼시절에 만화책이 만들어낸 문화지형을 기억해야 할 필요가 없게 됐다. 

지금 당장이라도 스마트폰 한대만 있으면 온라인에 접속해 만화작품을 볼 수 있다. 아니 이미지 중심의 만화가 아니라 멀티미디어 영상과 게임을 즐길 수 있다. 무선인터넷에 이어 곧 이동인터넷도 상용화 된다고 하니 이런 상황은 지하철이건 버스건 상관없이 벌어질 것이다. 

정말로 새로운 미디어가 출연하는 시대이고 이 미디어가 대량의 미디어콘텐츠를 필요로 하는 상황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미디어그룹과 미디어콘텐츠의 생산자들이 이를 기회보다 위기로 여기고 있다. 기존의 미디어는 시공간의 제약을 받고 나름의 전문분야가 나뉘어 있었다. 그러나 이 새로운 미디어의 시대는 전통미디어 간의 장벽을 모두 무너뜨리고 있다. 

포탈사이트의 뉴스모음 서비스가 전통신문의 1면 머릿기사를 스포츠연예 분야와 가십성으로 바꿔버리면서 정치 경제 기사 무용론이 불거지고 전통신문의 인터넷판은 이미 오래전 스포츠연예 정보 중심으로 바뀌어 버렸다. 동영상을 제공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방송사의 인터넷판 역시 텍스트 기사를 만들어 내고 있으며 이를 적극적으로 유통하고 있다. 어느순간 이 같은 미디어통합 현상은 기존 장르의 전문성을 평균치 이하로 떨어지게 할지 모른다. 만화작품 시장이 다른 엔터테인먼트 영역에 융합되는 것도 쉽게 예측 가능하다. 만화작품은 없고 만화적 표현형식만 남는 것을 상상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다만 한가지 위안을 삼을 수 있는 대목, 또 많은 고민을 집중해야 하는 대목이 있다. 만화는 누구보다 빨리 80년대의 만화방을 온라인에 옮겨오면서 그 공간성을 확장해냈다. 그 성과에 대해서는 아직 비판적인 부분이 많지만 전통적인 만화를 읽을 수 있도록 하는 공간의 마련과 인터넷만화라는 새로운 형식의 만화장르를 이끌어 낸 것은 긍정적인 평가가 가능한 부분이다. 또 하나는 이런 모색이 전혀 새로운 미디어 환경 하에서도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같은 기준으로 고민을 이어가자면 이제 90년대의 만화대여점 개념이 유무선만화콘텐츠서비스의 형식으로, 유비쿼터스 미디어 환경으로 넘어와야 할 것이다. 

기존 만화계가 만화방이라는 공간소비 개념을 대여와 이동소비 개념으로 바꾸어 놓은 것처럼 이제 온라인만화계가 온라인만화의 소비 개념을 유선인터넷환경에서 무선인터넷환경으로, 공간제공과 입장제 판매 방식에서 상품제공과 권당 판매 방식 등으로 이끌어 내야 한다. 물론 이에 준하는 콘텐츠의 변화도 필요하다. 마침 최근 온라인만화계는 기존 출판만화계의 스캔본 서비스 방식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다수의 업체가 신작 연재를 진행하고 있다(이는 90년대 초반의 만화전문잡지 창간 붐에 견줄만 하다. 시장의 트랜드는 반복되는 것이다.)

이제 고객은 이동 가능한 미디어-플레이어를 지녔다. 당연히 미디어는 이 플레이어의 기능성에 맞춰져야 할 것이고 미디어-콘텐츠는 이 플레이어와 미디어의 기능성에 대응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 지점에 대한 출판만화계와 온라인만화계의 많은 고민과 성과들을 기대해 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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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seokhwan

만화평론가 박석환 홈페이지. 만화 이론과 비평, 웹툰 리뷰, 인터뷰, 보도자료 등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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