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이 만화를 발견하다] 전극진·양재현 '열혈강호', 한국일보, 2004.2.17

웰메이드 만화의 선두

상업성 갖춘 새 무협 300만부 판매 초읽기

‘흥행에 성공해도 스타와 마케팅에 투입되는 비용을 제하면 안 남는 장사’라는 것이 문화 콘텐츠산업에 대한 인식이었다. 잘 만든 상품일수록 비용은 많이 드는데 국내 시장 규모만으로는 이를 회수하기 벅차고, 해외 시장에서 만회하자니 상품 자체의 파급력과 유통망 구축이 힘들어서 수익에 비해 투자 효율성이 낮다는 결론이다. 

그러나 영화 ‘실미도’의 관객이 개봉 두 달도 안돼 1,000만 명을 바라보는 시점에서 상황은 달라졌다. 잘 만든 영화 한편 때문에 ‘웰메이드(잘 만든 상품)’라는 저널용어가 유행하고 ‘밀리언’으로 통하던 문화콘텐츠 상품의 흥행 기준이 바뀌면서 다시 콘텐츠산업이 부각하고 있다. 

우리 만화계에서 이 같은 트렌드를 이끌고 있는 리딩 콘텐츠는 단연 전극진ㆍ양재현 콤비의 ‘열혈강호’이다. 1994년부터 만화잡지 ‘영챔프’에 연재되고 있는 이 작품은 현재 단행본 32권 통권 290만부가 발행됐다. 권당 8만~12만부가 판매되고 있는 만큼 곧 발행되는 33권에 이르면 ‘인기 만화 300만부 판매 시대’를 여는 국내 최초의 작품이 된다. 

1억 부 이상 판매된 작품이 여러 편인 일본에 비할 바 못되지만 우리 기준에서는 대단한 성과인 셈이다. 최근 출판만화 경기가 불황인 점을 감안하면 ‘진짜사나이’ ‘붉은 매’ 등이 호황기에 기록한 200만부 대의 판매와도 격이 다르다. 빌려보는 방식의 소비가 주축을 이루고 있는 시장 상황으로 보자면 이 작품의 실구독자 수는 1,000만 명이 넘을 것으로 예측된다. 

‘열혈강호’는 무협 장르가 신무협 코믹무협 등으로 탈장르화를 선언하면서도 극화 풍의 거친 맛과 비장감을 감추지 않으려 했던 데 비해 그림과 대사 등을 ‘새 것’의 상큼함과 가벼움으로 바꿔내면서 기획은 물론 흥행에도 성공한 작품이다. 판타지소설, 롤플레잉게임 등 당대의 유행 코드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한편 작품 내부에 의도적으로 전형성(대결방식 등)을 배치해 ‘반복의 즐거움’을 주는 등 상업적 전략에도 충실한 웰메이드 만화이다. 

이 작품은 지난해 ‘대한민국 만화대상 인기상’을 수상했고 일본의 만화잡지를 비롯해서 동남아 구미 등으로도 수출되고 있다. 동명의 라디오드라마 모바일게임 PC게임에 이어 최근 온라인게임이 제작됐다. KRG소프트가 제작한 온라인게임은 중국에 이어 대만 등으로도 수출될 예정이고 캐릭터 관련 상품도 준비 중에 있다. 

이 작품의 국내외 판권을 보유한 출판사 대원씨아이는 올 초 만화콘텐츠의 다매체상품화를 추진하는 OSMU사업부를 개설하고 인기 만화의 매체 전환 작업을 본격화한다는 계획이어서 ‘열혈강호’의 부가가치 유발액과 경제 파급효과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열혈강호’ 300만부 판매 기록과 만화콘텐츠 상품의 수익성은 곧 만화시장 전체의 규모를 재평가하고 성공의 기대치를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돼야 한다. 한 편의 잘 만든 작품이 만들어낼 수 있는 최대치의 매출표가 나오면 시장 예측이 가능한 만큼 제2, 제3의 ‘열혈강호’가 등장할 수 있는 투자기반이 뒤따를 수 있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한국일보, 2004-02-17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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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평론가 박석환 교수(한국영상대 만화콘텐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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