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만화’는 꿈 많은 사람을 위한 것, 생산적 소비 활동 있어야

만화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

지금으로부터 4천 600여 년 전인 이집트 제5왕조 시절 부하라 호텝이라는 노인이 ‘요즘 젊은 것들 하는 짓을 보니 말세로구나!’라고 한탄 했다는 기록이 있다. 신구세대 간의 갈등에 대한 기록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물론 지금도 써먹을 수 있는 문장이니 역사상 최고의 유행어라고 해도 좋겠다. 그와 비슷한 맥락에서 만화와 관련 된 가장 오래된 유행어를 찾자면  ‘만화는 아이들이나 보는 것!’이다. 누가 처음 만화라는 매체에 이런 평가를 내렸는지 굳이 찾을 이유는 없다. ‘만화유치론’은 가장 빈틈이 많으면서도 폭 넓게 이해되고 있고 ‘옛 말 하나 그른 것 없다’는 정서와 어우러져 마치 진실처럼 인식되고 있다. 때문에 이를 반박하겠다는 수 많은 논의와 근엄한 연구 조차 ‘코미디야 코미디’라는 비아냥이나 ‘괜한 헛수고’라는 자기 비하에 빠져있다. 덕택에 통과의례처럼 만화의 열성적 독자가 됐던 이들은 졸업장 숫자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만화책을 멀리하게 된다. 

만화책은 책꽂이 퇴출 대상 1순위고 이를 다용도실에라도 보관하려는 ‘늙은 아이’들의 노력은 기성세대의 수호자인 부모님에 의해 차단됐다-학년을 거듭해 갈수록 책꽂이에 꽂아야 할 책들이 산더미처럼 늘어나는 데 주거공간의 경제성을 따져야 하는 부모님이 부피만 큰 만화책의 보관을 용인하기는 어렵다. 더군다나 이 만화라는 것이 영상매체처럼 열린 공간에서 보는 것도 아니고 도서매체처럼 속 깊은 깨달음을 요하는 것도 아니면서 높은 재독욕구(이를 중독성이라고 해도 좋겠다)를 주기 때문에 그나마 모자란 학습시간을 잠식 당하게 마련이니 이를 제거하려는 부모님을 원망할 일만도 못 된다. 이쯤 되면 ‘만화는-학습시간에 쫓기지 않는-아이들이나 보는 것’이라는 유행어가 반쯤은 교훈적인 이야기로 들린다. 그대신 시험에도 출제되고 어른사회가 세습하고 싶은 질서를 충실하게 담아낸 ‘권장도서’ 또는 이를 간결하게 정리한 ‘권장도서 다이제스트’가 만화의 자리를 차지할 수 밖에 없는 일 아닌가?


만화는 꿈꾸는 사람이 즐기는 것!

시인 이승하(중앙대 교수)는 한 중앙일간지의 컬럼에서 길창덕의 만화 ‘꺼벙이’에 대한 감명을 적어내면서 만화의 역할과 순기능에 대해 논했다. 팔만대장경을 씨디롬에 담아내 화제가 됐던 종림 스님(고려대장연구소 이사장)은 동국대 인도철학과 재학시절부터 읽었다던 만화가 방학기 허영만 박봉성 등의 작품 계보를 줄줄 풀어내면서 만화와 시뮬라크르(원본과의 일치가 중요하지 않는 복제)의 관계를 찾고 그 안에서 불교철학을 논했다. 서울대 출신의 대학교수 이원복은 아예 중 고교시절부터 직접 만화를 그려 학비를 마련했다. 우리사회의 대표적인 ‘지식거래상’으로 통하는 그가 지식을 유통한 방식은 익히 알다시피 ‘먼 나라 이웃나라’ 같은 만화책을 통해서다. 

이밖에도 많은 아저씨 아줌마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나는 이 만화를 좋아했었다’고 고백 한다. 그들이 되풀이 하는 말 중 또 하나의 유행어는 ‘만화는 상상력의 보고’라는 것이다. 성공한 이들이 만화와 상상력을 결부시키는 것은 만화가 사실을 희화화하고 이를 부적절한 방식으로 전달하기 때문이 아니라 사실을 밀도 높게 단순화 시키고 재미있는 이야기 속에서 전달해줬기 때문이다. 사실전달에서 멈추지 않고 사실을 ‘첨삭’ 해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만화 매체의 매력이고 이는 성공을 향해 질주했던 그들에게 거대한 목표를 설정하게 했다. 일례로 ‘대죠신제국사’의 만화가 김산호는 자신의 초창기 인기작이었던 SF만화 ‘라이파이’에 등장하는 제비호(탐승우주선)를 몇 십년 뒤 세계 최초의 여객잠수함으로 실제 제작하여 미국을 중심으로 레저사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 여객잠수함으로 김산호는 성공하는 남성들을 인터뷰하는 미국의 잡지 ‘에스콰이어’의 표지모델이 되기도 했다. 이들에게 만화는 허황된 꿈과 당치 않을 목표를 설정하게 하는 시간 죽이기 용 여가 매체가 아니라 현실적 꿈과 목표를 설정하게 하고 이에 대한 열망을 향해 행복하게 질주할 수 있도록 돕는 가이드였다. 이대로라면 ‘만화는 아이들이 보는 것이 아니라 꿈 많은 사람이 보는 것’ 아닌가!


만화는 악영향이 있다? 

얼마 전 격투 소재 전문만화가 유상모가 요즘 유행하고 있는 이종격투기 대회에 실제 선수로 출전했다.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이 마이너리그에서라도 야구를 하고 싶다거나, 탈옥수 신창원을 잡았던 도시가스 점검원이 경찰 제복을 입는 것이 소원이었다고 하는 이야기는 현실과 상관없이 들려오는 흥미로운 사건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그들의 열망이 보인다. 하루종일 책상 앞에 앉아서 만화를 그리는 것이 주업인 사람이 전문 격투가들과 함께 링 위에 오른다는 것이 가능한가? 자칫 잘못하면 큰 부상을 입을 수도 있지만 유상모는 이 대회에 참가해서 준결승까지 진출했다-이 만화가는 전직 유도선수 출신이다. 준결승에서는 챔피온이 된 상대에게 흠씬 두들겨 맞아 온몸에 멍이 들었다. 하지만 유상모는 만족해 했다. 격투가가 되고 싶었고 이를 표현하는 방식으로 격투 만화를 그렸기 때문에 ‘소원 풀이’를 했다는 것이다. 이를 보는 시각은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다. 하나는 어린시절부터 소중하게 간직한 격투가의 꿈을 이뤄낸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어린시절 경험했던 대중매체의 학습효과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다. 

대중매체의 ‘사회학습이론(Social Learning heory)’은 사람들이 매체를 통해 대리체험 한 것에 대해 모방 심리를 지니게 되고 이를 실제로 따라 하게 된다는 내용의 이론이다. TV 뉴스 등에서 청소년 범죄 보도에 자주 등장하는 ‘(이 범행은)만화책에 나온 것처럼 했다’는 것이 바로 이 학습 효과이다. 가령 이 만화가가 격투가의 꿈을 지니고 링에 올랐다가 불행한 일이 벌어졌다면 언론은 즉각 ‘가치관이 미성숙한 청소년기에 받은 격투가에 대한 그릇된 선망으로 인해…’ 등 부정적인 보도를 했을 것이다. 


만화의 순기능 적극 수용, 생산적 소비 필요

대중매체가 사회학적으로 청소년에게 악영향을 준다는 배양이론(Cultivation Theory)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 이른바 정화이론(Catharsis Theory)이다. 대중매체의 사회학습이론은 ‘학술적 문제’에 있어 많은 지지를 얻기도 했지만 그만큼 반대 이론에 공격 당하기도 했다. 정화이론은 대중매체가 현실세계에서 경험할 수 없는 부분을 대리 체험하게 하고 이로 인해 공격적 정서 등을 정화시켜주는 기능을 한다는 쪽이다. 매체에 대한 오랜 연구가 있었으나 아직 두 이론은 증명되지 않은 가설에 불과하다. 즉 대중매체 또는 만화의 악영향 또는 순기능에 대한 연구는 지속화 되어야 할 과제이지 성급하게 결론 낼 수 있는 성격의 것이 못 된다. 

어디에 쓰느냐에 따라 칼은 도구가 되기도 하고 무기가 되기도 한다. 만화 역시 꿈을 이뤄주는 도구가 되기도 하고 헛된 욕망을 부채질하는 몹쓸 물건이 될 수도 있다. 문제는 이를 훌륭한 도구로 사용하겠다는 수용자의 의지와 태도에 달려있다. 최근 방송이나 신문에서 시청자나 독자 참여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배경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수용자의 비판적 접근과 참여가 있어야 방송과 신문이 휘청거리지 않고 정도만을 걸을 수 있고 공적 도구로서의 기능을 다 할 수 있다. 만화도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만화가나 출판사에 의해 대량생산 된 상품을 단순 소비하는 구조에서 벗어나고 있다. 독자의 참여로 만화작품의 순위가 결정되는가 하면 독자의 요구에 의해 좋은 작품이 재출판 되기도 하고 새롭게 주목 받기도 한다. 또한 소비자 스스로 생산자가 되어 소량 출판을 시도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만화는 다른 매체에 비해 청소년층과 밀접하고 글과 그림의 조합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미디어교육의 좋은 재료이기도 하다. 클럽 등을 중심으로 만화독서 토론과 창작활동 등을 하는 것은 단순한 놀이 이상의 즐거움과 교육적 가치를 지닌다. 만화에 대한 더욱 적극적인 소비활동은 만화의 순기능을 강화시키는 한편 진정한 의미의 생산적 수용자 시대를 불러 올 수 있다. 생산적 수용자란 이른바 인터넷만화의 예에서 확인 할 수 있는 것처럼 단순 소비자에 불과했던 이들이 인터넷을 통해 자신이 직접 생산한 만화를 올리고 이를 네티즌에게 평가를 받는 등의 활동으로 대표될 수도 있고, 만화에 대한 감상을 올리고 네티즌의 의견을 중심으로 독자의 의사가 반영된 작품 창작이나 출판을 작가나 출판사에 요청하는 등의 활동도 될 수 있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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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평론가 박석환 교수(한국영상대 만화콘텐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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