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호랑이 이야기의 안수길, 만화규장각, 2002


안수길


안수길은 호랑이 잘 그리기로 유명한 만화작가이다. 그의 출세작 <<호랑이 이야기>>는 곡마단에서 탈출한 호랑이가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서 대자연과 호흡하며 진짜 호랑이로 살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원색 동물 백과’에 나올법한 세밀한 호랑이 일러스트와 ‘자연도감’이나 ‘동물의 왕국’ 같은 TV프로그램에서 봤음 직 한 호랑이의 생태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출판사의 원본 원고 분실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출판사 측 변호인이 배상 비용을 낮출 요량으로 ‘안수길은 호랑이만 잘 그리는 만화가’라는 기이한 변론을 펼쳤을 정도로 작가의 호랑이 그림은 정평이 나있다. 

1963년 생인 작가는 고교를 졸업하자마자 당시 명랑만화를 그렸던 함상훈의 문하생으로 만화계에 입문했다. 끼니를 걸러가며 만화 수업에 열중하던 중 군에 입대를 했고 제대 후인 1985년부터 5년 여간 시대역사(해학) 만화를 그렸던 한재규 문하에서 배경담당으로 일했다. 


자연물 배경을 담당한 탓일까? 만화평론가 손상익과의 인터뷰에서 안수길은 이때부터 ‘동물만화를 그려야 겠다’는 뜻을 굳혔다고 한다. 그러나 첫 데뷔작은 1990년 연재를 시작한 <판소리 소녀경>. 중국의 음서 <<소녀경>>을 토대로 한 성애 만화였다. 호방한 경상도 사내의 얼굴을 간지럽게 한 데뷔작은 오래가지 못했다. 대신 호랑이를 등장시킨 최초의 동물만화 <호야>를 [매주만화]에 게재했다. 

모든 참고자료가 그렇듯 호랑이와 관련 한 자료 역시 한정적일 터. 몇 번 써먹고 나면 똑 같은 모양이 반복되는 탓에 만화 속에 등장하는 호랑이의 모습은 서로 닮을 수 밖에 없다. 이는 호랑이만 그리는 작가가, 그것이 곳 작품인 작가가 풀어야 할 최고의 숙제이다. ‘하루에 한 컷 밖에 그리지 못할 때가 숱한 호랑이와의 기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호랑이의 줄기무늬에서부터 터럭하나 까지 놓치지 않고 묘사하고, 어디에서도 예시를 찾을 수 없는 호랑이의 표정을 담아내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다. 

대자연의 경관을 칸 속에 열거하고 그 안에서 의인화된 호랑이가 좁다는 투정없이 뛰어 놀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작가가 얼마나 많은 위치에 호랑이를 출연 시켰을지? 그 동안의 고민과 열정은 그대로 자신감이 되었을 터. 안수길은 좁은 국내 만화시장에 연연하지 않고 직접 국제 무대로 뛰어들었다. 


고 이재학이나 황미나는 국내에서의 인기를 바탕으로 해외작가를 소개하는데 주력했던 일본의 주간만화잡지 [모닝]에 발탁되어 연재를 시작했다. 반면 안수길은 스스로 연재를 요청한 경우이다. [모닝]은 1994년 작가가 직접 보낸 작품을 보고 곧바로 연재를 결정했다-안수길은 그래픽노블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미국의 만화잡지 [헤비메탈]에도 작품을 보냈고 호의적인 평가를 받았지만 연재가 결정되지는 않았다. 4년 여를 넘도록 연재된 작품은 일본에서 단행본으로 나왔고 이후에 한국어로 번역 출판됐다. 

해마다 그림이 달라지고 달마다 이야기가 달라지고, 일본만화의 트랜드에 따라 그 옷을 바꿔 입고. 자기만의 것을 진부한 것으로 이해하는 국내 만화의 창작 풍토에서 안수길의 성과는 우리만화계가 귀담아 들어야 할 선언이다. 꼭 한가지만이라도 최고가 되어야 겠다는 신념과 자기 만의 것을 지니겠다는 장인적 고집. ‘호랑이만 잘 그리는 만화가’라는 타이틀에도 행복 할 수 있는 이유이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만화규장각, 부천만화정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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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평론가 박석환 홈페이지. 만화 이론과 비평, 웹툰 리뷰, 인터뷰, 보도자료 등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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