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시사풍자의 이미지가 사실을 왜곡한다면, 용인신문, 2002.04.01


간단명료해야할 시사 풍자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유


전국을 돌며 표 대결을 벌이는 민주당의 국민경선이 한창이다. 주말마다 펼쳐지는 사상 초유의 정치쇼에 온 국민이 열광하고 있다. 초반부터 노무현, 이인제의 2강 구도로 출발한 경선은 스포츠뉴스를 방불케 하는 박진감과 주말 역사극의 드라마적 재미를 넘어섰다. "국민경선이 월드컵을 고대하는 스포츠팬들의 관심을 빼앗아 갔다"는 농담이 떠돌 지경. 이처럼 거대한 국민적 이벤트가 펼쳐질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시비거리가 또 하나 있으니 촌철살인으로 대표되는 시사만화가 그것이다. 


시사만화는 일반적으로 1칸으로 구성되어 신문의 정치면에 실리는 만화를 뜻한다. 개인적인 창작물이라는 점에서 작가의 의식을 기반으로 하지만 에디토리얼 카툰이라고 불리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 편집국의 의도와 무관하지 않다. 신문의 1면 머릿기사가 그날의 가장 큰 보도성 기사로 장식되듯 정치면에 실리는 1칸 만화 역시 편집회의를 통해서 구체화된 사안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1칸 만화 속에는 특정 사안에 대한 각 신문사의 시각이 깊숙하게 자리한다. 그런 까닭에 시사만화에 대한 비난이 작가 개인을 향하기도 하지만 신문사를 향하기도 한다. 시사만화가 다루는 주 소재는 정치인이나 특정 이슈를 만들어낸 유명인을 대상으로 한다. 이들을 만화의 장르적 특성을 통해 희화화 시킨다는 점에서 해석과 표현에 대한 시비가 항상 따라 다닌다. 


최근 국민경선과 관련 각 신문사의 만평이 화제가 되고 있는 것도 이 대목. 신문이 사실 보도의 원칙을 잡고 있더라도 간단한 정황과 사실을 토대로 이를 풍자하는 만평은 사실을 왜곡하고 독자의 판단을 흐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유럽의 정론지 중에는 1면에 사진을 게재하지 않는 곳도 있다. 이미지가 사실을 왜곡시킬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시사만평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최근 수준으로 끌어올린 사건은 국민경선에 앞서 화제가 됐던 동계 올림픽이다. 당시 쇼트트랙 부분에서 아깝게 금메달을 놓친 김동성 선수를 ‘태극기를 내팽개치는 X'이라고 비난했던 조선만평(신경무 화백)은 국민적 분노를 넘어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행태를 비난하는 수준으로 까지 번졌다. 인터넷에서는 당시 김동성이 태극기를 내팽개친 것이 아니라 스케이트 날에 걸려 태극기가 떨어졌던 것임을 확인시켜주는 동영상이 일파만파로 번졌었다. 


신경무 화백에 이어 안티-만평열풍의 대열에 오른 이는 동아만평의 김상택 화백. 국민경선 과정 중 민주당 고문 김근태의 탈퇴 사유와 관련 경기고 동문이 상고 출신에게 밀렸다는 투로 풍자한 것이다. 이어 개제된 이홍우의 4칸 만화 ‘나대로’에서도 노무현 경선 후보의 학력과 관련한 풍자는 계속됐고 네티즌과 독자들을 이를 강력하게 비난하고 나섰다. 김대중 대통령이 상고출신으로 경기고 출신인 이회창을 지난 대선에서 이긴데 이어 이번에도 상고 출신의 활약이 계속된다는 것. 개별 사건에 대한 개연성이 충분하고 시사만화가들은 이를 풍자의 소재로 삼은 것이다. 문제는 사회각층에 만연되어 있는 학력주의, 학력연고주의를 시사만화가들이 조장하고 있다는 것. 이어 쏟아진 1칸 만평과 4칸 만화들이 ‘이번 경선에서는 기필코 없애야 할 것’으로 뽑고 있는 지역주의 등을 조장하는 내용을 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시사만화는 즉시성을 가장 큰 장르적 특성으로 삼고 있다. 짧고 간결한 이미지와 말풍선에 담긴 간단한 대사로 독자들이 ‘척 보면 알 수 있는 내용’이어야 한다는 것. 즉 이러저러한 잔가지들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지 않고 확연하게 전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의 소재로 하나 이상을 이야기하면 시사만화의 즉시성이 떨어지고 해석의 다양성으로 인해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많아지는 것. 그러나 시사만화가 기본적으로 이미지의 묘를 지니고 있는 탓에 보는 이의 인지적 배경 요소에 따라 내용이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즉 작가가 AA를 목적으로 작품을 그렸는데 어떤 독자의 경우는 여기서 A만을 볼 수 있고 어떤 독자의 경우는 AAA를 볼 수 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시사만화는 건강한 풍자를 통한 비판정신을 정수로 한다. 권력적인 어떤 요인에 대한 비틀기는 권력 너머의 어떤 것을 만화를 통해 확인시켜 줄 수 있고 권력적인 것과 비권력적인 것의 차이를 줄여주는 역할을 한다. 이념노선의 대립이 확연한 시기에 시사만화가 화제를 모으는 것도 이 때문이다. 


tip

신문에 수록되는 만화를 일반적으로 시사만화라 한다. 정치면에 수록되는 1칸 만화를 정치만평, 사회면에 수록되는 4칸 만화를 시사만평이라고도 한다. 이 밖에 <광수생각> 등의 다양한 형식의 신문만화를 생활만화라고 한다. 정치만평이나 시사만평의 경우 만화가들이 화백이라는 직급을 지닌 신문사의 직원으로 활동하고 있고 생활만화의 경우는 외부 작가에게 청탁 원고를 수록하고 있다. 정치만평과 시사만평이 작가 개인의 의지보다 신문사 편집부의 의지를 대표하는 것은 직원의 신분을 지녔다는 것도 중요한 작용을 한다. 반면 생활만화의 경우는 외부 작가가 작업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편집부의 의지가 많이 담기지 못한다. 이 경우 너무 개인적인 의지가 많이 작용해서 문제가 되기도 한다. 가령 생활만화가 해당 신문의 논설과 같은 소재를 대상으로 했는데 그 귀결 방향이나 주장이 전혀 다를 수도 있고 이 경우 신문사의 입장과 전혀 다른 주장이 펼쳐지기도 해서 독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용인신문, 2002-04-01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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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평론가 박석환 홈페이지. 만화 이론과 비평, 웹툰 리뷰, 인터뷰, 보도자료 등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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