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이재석의 사건과실화, 굿데이, 2002.01.08


클릭월드에로카툰6.

친숙한 이웃남녀 `살들의 향연` 


성인을 위한 만화라고는 신문의 `시사만평`밖에 없었던 시절. 당시에는 등사용지에 철필로 직접 그려 32절 갱지에 인쇄한 `지하만화`라는 것이 있었다. 거칠게 번진 선의 윤곽을 따라가다 보면 정신이 몽롱해지고 온몸이 요동치게 되는 만화다. 소재는 물론 섹스. 화장실에 숨어서 보기 딱 알맞을 분량으로 불법제작된 이 만화는 386세대의 기억 한편에 감춰져 있는 추억 중 하나다. 

이를 다시 살린 작품이 바로 이재석의 <사건과 실화>. 작가 스스로 `청량리판 만화` `갱지만화의 패러디`라 할 만큼 그 시절 그 만화를 옮겨왔다. 사건은 짧은 대사로 처리되고 살들의 향연 또는 옷 벗고 힘겨루기로 점철된 실화가 계속되는 작품이다. 현장감이 넘쳐나다 못해 과격하게 느껴지는 대사는 얼굴을 붉히게 만든다.

등장인물은 옆집 유부녀, 옥탑방 여인, 여사원 미스리 등. 상대역으로 나선 남성들 역시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철수와 영이, 바둑이처럼 우리에게 친숙한 캐릭터. 철수와 영이가 만나면 학교에 가야 되고 바둑이는 꼭 뒤따라 온다는 식의 자연스러움이 넘쳐난다. 큰 사건 없이 `삐리리`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다양한 방식의 성관계가 벌어진다. 바둑이가 따라오듯 반복과 반전도 펼쳐진다.  

<사건과 실화>는 국내 최초의 연재만화 웹진인 <코믹콜>의 히트작이었으나 업체 사정으로 인해 사이트가 문을 닫자 연재가 중단됐다. 연재 분량 중 일부만 단행본으로 나와 있어서 네티즌 사이에 `나머지 찾아보기` 열풍이 불기도 했다. 

작가의 또 다른 작품 <섹스닷컴>과 <엑스등급>은 <사건과 실화>의 컬러판 격. 단편 옴니버스 형식을 취한 이들 작품에는 패러디 소재를 찾는 재미도 들어 있다. 각 작품의 스타일은 대동소이하지만 작가의 매력은 한층 성숙했다. 

캐릭터를 단 한 칸으로 설명해내는 압축력과 지면의 90%를 `살색 놀이`로만 채우고도 이야기를 끝내는 맺음새가 돋보인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

굿데이, 2002-01-08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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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평론가 박석환 홈페이지. 만화 이론과 비평, 웹툰 리뷰, 인터뷰, 보도자료 등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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