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에릭 스탠톤의 The art of Eric stanton, 굿데이, 2001.12.11

클릭월드에로카툰 4.

에릭 스탠톤의 The art of Eric stanton


작품 모음집 형식을 취한 The art of Eric stanton은 기괴한 것의 전설적인 천사로 불린 에릭 스탠톤의 40년 작품 세계를 담고있다. 

1926년 뉴욕에서 태어나서 1947년 일러스트레이터와 만화 예술가로 데뷔한 스탠톤의 작품 활동은 대개 부자 의뢰인의 주문에 의해 이뤄졌고 이를 이후에 출판하는 형식을 취했다. 그의 회화풍을 고려한다면 제목만으로도 느낌이 오는 <털이 많은 공주><전쟁하는 소녀>등의 대표작도 청탁 생산이었고 이 작품집에는 이를 증명하는 청탁자의 은밀한 편지가 함께 수록됐다. 

스탠톤의 작품 내용은 극도로 단순하고 반복적이다. 16페이지 이내의 짧은 형식을 취한 초창기 작품은 대개 이런 식이다. 한 여자의 집을 찾은 옆집 여자가 갑자기 레스링 경기를 청하고 어느새 요상한 기술들이 반복 사용되면서 갑작스레 ‘띠리리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이때부터 끝까지 각종 포즈가 만발한다. 중기 작품 역시 다르지 않다. 발전 요인은 로프. 갑자기 등장한 여자가 상대방을 묶기 시작한다. 특별한 이유없이 욕지거리를 하면서 묶는다. 마치 재활용 종이를 구겨서 묶는 것처럼. 여기서 더 진보된 작품은 여자를 마술상자 같은 곳에 넣는 것이다. 상자에 넣고 톱이나 칼을 이용해 신체를 절단하는 듯한 방식이지만 진짜 자르지는 않는다. 그저 불안감을 고조시키고 만다. 90년대 중반 가장 최근의 작품에서는 상대를 때리기 시작한다. 자연스럽게 파트너에게 다가간 여자는 상대의 무릎 위에 기대어 엉덩이를 때려줄 것을 요구하고 환하게 웃던 파트너는 금방 성난 사내가 된다. 

도도한 표정과 남성적 과격함이 느껴지는 인상. 극도로 높은 하이힐. 긴다리와 한 주먹도 안될 듯한 허리. 풍만하다 못해 옷 사이로 삐져 나올 것 같은 가슴. 슈퍼모델급의 아리따운 여성이라기 보다는 성난 원더우먼 같은 여성들이다. 그저 그런 포르노그라피로 볼 수도 있지만 90년대 중반까지 작품활동을 쉬지 않은 이 저력의 작가는 미국 성인 만화팬들에 의해 전설이 됐다. 그의 작품이 고연령 마니아의 수집대상 1호로 기록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2차 세계 대전 전후에 작품 활동을 시작한 스탠톤의 만화에는 남자들을 전쟁에 보낸 여성들이 억눌러야 하는 욕망의 분위기와 현실을 도피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아이들의 장난감을 요상한 용도로 공유하고 있는 여성의 신경질적인 이미지. 이에 대한 보상이 그의 작품을 기억하게 하고 삐리리한 사연과 함께 거액의 작품비를 지불하고서라도 그려줄 것을 요청하게 하는 것은 아닐지.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

굿데이, 2001-12-11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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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평론가 박석환 홈페이지. 만화 이론과 비평, 웹툰 리뷰, 인터뷰, 보도자료 등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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