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스즈키 유미코의 미녀는 괴로워, 2000


미녀는 괴로워

Yumiko suzuki

일본/ Kodansha 1997

한국/ 서울문화사 1999

한국어판 1권 - 5권(완간)


> 리뷰


작가 스즈키 유미코는 1인 2역의 변신영웅물 코드에 악취미 코드를 섞어서 전혀 색다른 즐거움의 순정만화를 탄생시켰다. 순정만화에서 주인공 여성의 화려한 변신은 그 상투성과 당연함만큼이나 극적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신델렐라 처럼 표피적인 화려함을 지닌 공주가 되는 과정을 보여주진 않는다. 작품이 시작하면서부터 이미 주인공은 모든 남성에게 각광받는 매력적인 여성으로 그려진다. 단, 작품의 구성은 ‘과거의 주인공은 이랬다’는 식의 나레이션과 주인공의 독백을 강조한다.

초인적인 영웅이 지닌 ‘과거의 딜레마’, ‘아킬레스건’을 뒤로 감춘 주인공의 등장은 이 작품의 도입을 극적인 흥미와 매력으로 넘쳐나게 만들어냈다. 그 딜레마의 실체는 ‘전신 성형수술’. 클립톤 행성으로부터 유배된 빨간망토 사나이 슈퍼맨이 사랑 때문에 초영웅으로서의 힘을 반납하고자 하는 인간적 고뇌에 흔들린다면, 이 절정의 성형미인은 사랑을 얻기 위해 미녀에게만 부여되는 ‘남성의 시선에 대한 우위’를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작가는 주인공과 독자만의 비밀관계를 유지하고, 등장인물들의 ‘사실확인’을 위한 노력에 대응하는 주인공의 웃기는 전술들을 보여준다. 작가가 이를 위해 사용한 기술은 ‘고정관념’이다.

작가는 개인을 공격해오는 각종 현상들에 대한 자기 방어, 그리고 자기 이해의 과정이 못생긴 뚱보 여자 주인공에게 수많은 고정관념을 만들어 줬다고 설명한다. 남성들의 시선에 의해 무참히 파괴되고 마는 못생긴 뚱보여자의 삶, 도무지 공식적인 공간으로 진입할 수 없을 만큼 처참해진 못생긴 뚱보여자. 못생긴 뚱보여자는 지상으로부터 유배된 삶을 강요받고 그로인해 ‘혼자 묻고, 답하기’의 과정을 반복한다. 그리고 그 과정의 익숙함은 주인공에게 극도의 보상심리가 반영된 고정관념을 만들게 한다.

작가는 이를 가시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전략으로 주인공을 몇몇 등장인물들과 접촉하게 한다. 그중 가장 효과적인 만남은 ‘천연미인’과 두명의 ‘뚱보여자’. 작가는 이들을 통해 주인공의 ‘뚱보시절’과 ‘미녀시절’을 재현해낸다. 이들의 등장은 주인공의 사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천연미인과 두명의 뚱보여자 중 나나코는 미녀이면 미녀대로 뚱보면 뚱보대로 사랑받는 방법이 있음을 느끼게 하고, 주인공이 자기만의 매력을 발굴하지 않는 게으름을 질책한다. 또 다른 뚱보인 하마코는 미남자에게 철저히 이용당하는 여인이다. 이 여인의 등장은 씁쓸하기만 하다. 그러나 이 여인을 끊임없이 돕고자하는 주인공은 속마음의 성형까지는 성공시키지 못했고, 그 대가로 작가는 뚱보다운(자기다운) 사랑을 얻게 해준다.

이 대목에서 작가의 치밀한 전략과 독자의 감성조절을 위한 구성이 매우 흥미롭다. 주인공은 천연미인 나나코와 두명의 뚱보여자 마사요와 하마코를 차례대로 만난다. 이들은 각각 못생기고 뚱보인 젊은 여자가 유년기부터 20대 중반쯤까지 살아가는 삶의 모양들을 극적으로 대변하고 있다.

모든 여자의 유년기는 공주 같은 삶을 재현하는 기호들에 의해 지배당한다. 즉, 모든 여자는 나나코와 같은 아름다움을 강요받고, 그것만이 자신의 미래임을 예측하게 한다. 그러나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자신의 외형에 대한 고민에 빠지게 되고, 몇몇 설익은 경험들은 자신의 현재를 비판적으로 수용하게 만든다. 작중 뚱보였던 마사요는 이를 적극 활용, 오히려 남자들의 뒤통수를 치는 여인으로 등장한다. 반면 남자들에게 심하게 이용 당하고있는 하마코는 그 지점마저 넘어섰다. 자기멸시와 그에 따른 자기 합리화, 남자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의 모습들이 그렇다. 작가가 세 명의 여성 캐릭터들을 통해 주인공의 삶을 스펙트럼처럼 보여주고 있음은 각각의 등장인물에게 주어지는 상황을 통해서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작가는 초미립자현미경으로도 확인할 수 없는 인간, 여성들의 감춰진 심리를 바닥까지 끄집어낸다. ‘악취미 유머’코드의 방만한 사용은 주인공이 지니고 있는 고정관념에 의한 피해와 맞물리면서 독자들에 대한 작가의 공격으로 읽힌다. 고정된 인식, 고정된 인격으로 여성을 바라보고, 작품을 즐기려는 독자들에 대한 작가의 반격이다. 이야기의 극심한 불쾌함은 작품을 읽는 동안 내내 쓰레기통에 쓰셔 넣고 싶은 충동을 준다. 하지만 그처럼 쓰셔 박혀있는 뚱보여성들은 활화산처럼 일어날 것이다. 


> 코드

변신 악취미 순정만화


> 인물설정

칸나즈키 칸나 - 대학교 구내 식당에서 잡일을 하던 못생기고 뚱뚱한 여자. 짝사랑하는 코스케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수백만 엔을 들여 전신성형수술을 하고, 과거의 삶 전체를 부정한다. 그러나 겉만 미녀일뿐 속마음은 여전히 과거의 모습. 

렌다이지 코스케 - 칸나가 온 삶을 받쳐 사랑하는 아름다운 청년. 질투심 많고 제 멋대로인 미인보다는 이해심 많고 귀여운 여자를 사랑한다.

스미다가와 나나코 - 코스케를 좋아하는 천연미인. ‘미인의 삶이란 이런 것’ 임을 칸나에게 인식시켜주고, 미래의 삶을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아라카와 마사요 - 코스케의 첫 애인. 못생기고 뚱뚱하지만 자기만의 멋으로 여러남자를 사귀는 능력을 보여준다. 칸나가 놓쳐버린 과거의 삶을 멋지게 살고 있다. 

하마코 - 과거 칸나의 삶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뚱뚱하고 못생긴 여자. 칸나로부터 동질감에 의한 동정을 유발한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

이미지 맵

Parkseokhwan

만화평론가 박석환 홈페이지. 만화 이론과 비평, 웹툰 리뷰, 인터뷰, 보도자료 등 게재

    'Critique/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