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요리만화 속의 문화적 코드, 가톨릭 대학보, 1999.11.2



요리와 관련된 다양한 문화창작물

‘자장면 한 그릇이 견고한 예술의 벽을 깨고 들어왔다.’ 

자장면과 관련된 영화들(<신장개업>, <북경반점>)이 개봉되는가 싶더니 만화(<짜장면>)가 출간되고, 자장면을 주제로 한 이색 전시회(‘엘비스 궁중반점 전’)와 라이브 공연(‘자장면 콘서트’)이 펼쳐졌다. 자장면뿐만이 아니다. 생선회와 초밥만들기로 대전을 벌이는 일본만화(<미스터초밥왕>)가 엄청나게 팔렸고, 세상의 음식을 상대로 냉철한 시각과 칼 같은 문장을  휘둘러 대는 신문기자 이야기(<맛의 달인>)는 각종 매체에 새로운 소재를 제공하고 있다. 아침시간에 집중 편성되던 요리프로그램이 각 방송사의 간판 연애오락프로에 등장하는가 하면, 신문・잡지에서 자취를 감췄던 음식・음식점 기행문이 빼곡히 지면을 차지하고 있다. 라면을 소재로 구성한 홈페이지가 화제가 되고, 인기스타들을 앞세워 기획 편집한 요리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된다. 

음식, 배불리 먹기에서 음미하기까지

IMF로 인한 실직 인구의 증가로 소규모 창업자들이 늘어나자,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먹는 장사가 남는다’고 말한다. 옛날부터 들어왔던 별스럽지 않은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들을 돕겠다고 나선 한 방송국의 ‘신장개업’이라는 프로그램을 보면 달라진 무언가가 보인다. 이 프로그램은 음식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비법을 전수하는 과정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음식 자체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각계의 전문가들을 모아놓고, 주인의 서비스정신, 업장의 분위기 등을 바꾼다. ‘식탁 위에, 은쟁반에’ 놓인 음식만이 아니라 먹는 행위에 포함되는 모든 요소들이 ‘맛’과 연결 돼있고, 손님들은 이제 ‘양보다 질’을 우선한다고 말한다. 

 요리, 장인의 손길에서 아티스트의 정신으로

일본만화가 우에아라 토시(<아빠는 요리사>의 작가)는 ‘요리에는 어릴 적 했던 흙장난 같은 재미가 있습니다. 만들어서 즐겁게 먹을 수 있다면 최고, 실패하더라도 즐겁’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주인공 일미는 가정, 직장에 충실한 직업인이요, 자신의 특별한 취미를 즐기는 자유인이다. <미스터 초밥왕>에서 주인공 쇼타와 그가 상대하는 초밥요리사들은 최고의 장인이다. 끝없는 기술연마와 자기 개발, 그리고 라이벌과의 접전을 통한 깨달음까지. 마치 싸움꾼이 아닌 참 무예가가 되기 위해 길을 떠나던 중국영화의 주인공들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아직 쇼타는 자기와의 싸움을 지속하는 장인에 불과하다. 반면 <맛의 달인>에 등장하는 신문기사 지로는 ‘주말 화가’ 다운 면모를 보인다. 실생활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이와의 정서 교류를 위한 목적으로 요리를 한다. 배로 가는 음식이 아니라 마음으로, 감동으로 이어지는 요리를 한다. 요리를 통해 미적 탐구와 그 목적, 가치를 찾아내고 있다. 

‘음식’, ‘요리’라는 컨텐츠웨어

성곡미술관에서 열렸던 ‘엘비스 궁중반점 전’은 묘한 전시회였다. 싸구려 대중음악과 이발소 그림들이 즐비한 가운데서 주방장 모자를 쓴 미술가가 자장면을 만들고 있다. 우리가 만들어 논 일상. 온갖 잡종・변종의 기호들로 가득한 일상이 가감없이 제시된다. 자장면과 엘비스는 그 잡종의 문화를 보이기 위한 상징이다. 대중의 관심과 의식, 담론과 사례를 통해 자장면도 엘비스도 진화하고 있다. 이처럼 음식은 한 사회의 상징이 되기도 하고, 그 사회를 알 수 있는 키워드가 되기도 한다. 요리에 대한 최근의 관심 역시 그 사회를 보게 한다. 사람들은 바빠졌고, 땅덩어리는 좁아졌다. 냉장고도 믿을 수 없다. 매일의 식사는 간단하게 진행된다. 김치 등의 저장음식이 사라진다. 하지만 가끔 먹는 일을 즐기고 쉽다. TV, 비디오 등 집에서 즐길 수 있는 오락이 수동적이어서 싫다. 스스로를 위해 장을 본다. 남지 않을 만큼 즐기면서 만들고, 배고프지 않을 만큼 먹는다. 그런 이들을 위해 문화예술 장르에서는 음식과 요리라는 소재를 적극 활용한다. 흐르는 미디어인 영화, TV는 요리로 재미를 줄 수는 있지만, 실체험을 위한 교재가 되긴 어렵다. 그래서 ‘재미있는 이야기’와 ‘요리 만들기’가 함께 있는 요리만화가 평가받는 것이다. (끝)


가톨릭대학보/먹거리음식, 즐길거리요리, 그리고 문화/1999-11-02 게재


글/ 박석환 (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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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평론가 박석환 교수(한국영상대 만화콘텐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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