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시각정보사회의 만화-만화의 즐거움, 새천년문화축제, 1999


우리는 매일 시각 정보들을 읽도록 강요받고 있다. 신호등의 파란불이 켜지면 차도를 횡단할 수 있다고 교육받고, 빨간불이 켜지면 위험하다는 것을 알게된다. 유아기부터 엄마의 몸짓과 행동이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지 배우게 된다. 그리고 이와 같은 것을 가장 대표적인 시각 정보인 ‘문자’를 통해 표현하는 법을 배운다. 그래서 지금까지 ‘문자’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이들이 모범생이 되고, 사회 각층의 지도자가 돼왔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의사전달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문자’, 정보 저장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문자’가 그리 신통치 않음을 발견한다.


십 몇 년간 문자를 다루는 공부를 했으나 외국인과의 의사소통은 여전히 손짓, 몸짓이 앞서고 그토록 재미난 이야기를 아름답게 묘사했다는 ‘소설’ 유의 판매고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정보전달 수단으로서의 문자가 지닌 가치를 높였던 ‘신문’도 헤드라인 크게 쓰기 경쟁에 지쳤는지 영상 정보(사진, 그림 등)를 앞세우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문자’가 누려왔던 지위가 바닥에 떨어지진 않을 것이다. ‘문자’는 나름의 변혁을 통해 사람들의 기호를 맞춰나갈 것이 분명한 까닭이다. 그러나 우리는 ‘문자’가 ‘의사표현’을 쉽고 간결하게 하기 위한 ‘시각정보’의 일종일뿐, 최선의 방법은 아님을 알게됐고, 전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표현법을 찾게됐다. 교통표지판 등 각종 기호나 부호, 컴퓨터의 아이콘, 수화 등과 다양한 형식의 영상정보가 그것이다. 말과 글은 직접적이고, 제한적인 표현을 지니고, 때로는 너무 많은 의미를 지니는 까닭에 저마다의 사고체계에 혼란을 가중시킨다.

영상도 이와 다르지 않으나 더욱 직접적이고, 매우 풍요로운 의미를 중첩시킬 수 있다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그 중에서도 ‘만화’는 ‘영상’과 ‘문자’가 상호 보완 작용을 통해 정보(이야기, 메시지)전달을 하는 독특한 구조를 띈다. 즉, 한눈에 작가의 의도를 알아 볼 수도 있고, 선형적 이야기 구조를 통해서 점차로 알 수 있게도 한다. 다른 영상매체도 이와 다르지 않은 전달 방식을 지닌다. 그러나 다른 영상 매체는 하드웨어(TV, VTR, PC 등)와 소프트웨어(프로그램)가 철저히 분리돼있고, 사용자의 의도에 따른 ‘이야기 전개’가 쉽지 않다. 이에 비해 ‘만화’는 ‘문자’의 특수성을 보존하는 책의 형태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고, 특히 정보 흡수 시 사용자에 따라 시간 조절이 가능하다는 강점을 지닌다. 이와 같은 ‘만화’ 매체의 특수성은 ‘문자 맹신 사회’에서 ‘이미지 선호 사회’로의 전환기에 강점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만화’에 대한 재인식의 기회를 만들고 있다.

최근 ‘만화’는 매체적 특수성과 관련, 작가・기획자들에 의해 다양한 형식의 시험무대에 올려지고 있다. 이는 ‘만화’ 매체의 효용성을 높여주고 있으며, ‘만화’에 대한 일반의 신뢰도를 높이는 계기가 되고 있다. 독특한 영상매체로서 새로운 문화의 시기에 그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는 ‘만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산업적’인 측면을 먼저 이야기해야 한다. 만화와 산업의 연결이 그리 반가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결코 싫을 이유도 없다. 문화가 소비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면 ‘산업적’ 측면은 당연히 부각된다. ‘시각문화’, ‘영상매체’의 번성 역시 산업적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봐야 할 것이다. 이중에서 ‘만화’는 과장과 변형이 자유롭고, 타 영상매체로의 전환이 가장 손쉬운 매체로 손꼽히고 있다. 최근 한 TV드라마는 방영과 함께 드라마대본을 바탕으로 한 소설과 음반, 등장인물의 특징을 부각시킨 ‘캐릭터’를 이용한 각종 상품 등을 내놨다. 이른바 ‘종합문화상품’이랄 수 있는 이와 같은 형태의 문화상품 개발에서 ‘저자본 생산물’ 중 하나로 볼 수 있는 출판만화는 당연 돋보인다. 즉, 원작 출판만화의 제작은 그 자체로 부수적인 판매가치를 신장시키며, 다양한 관련 상품을 개발할 수 있는 설정집의 역할을 하게 된다. 출판, 영상, 음반, 게임, 팬시, 테마파크 등을 아우르는 ‘만화의 산업적 영향력’은 수많은 만화가 지망생 군을 만들어냈고, 대학에 만화관련학과가 개설되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새로운 산업, 새로운 기술이 새로운 문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같은 이유를 전제하더라도 ‘만화’가 이끌어내는 청소년문화의 다양성은 별개의 논의를 필요로 한다. 최근 청소년들은 만화를 통해 지성과 감성을 충족시키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지하철에서 만화를 보는 것이 낯스럽지 않게 됐고, 중고등학교에 만화관련 써클이 생기고 ‘방과후 특성화 교육’의 한 과목으로 ‘만화창작’이 이뤄지고 있다. 만화동호인들의 활동도 기성작가들을 위협할 정도로 성장세에 있고, ‘출판으로서의 만화’ 외의 다양한 움직임들도 포착된다. 만화를 단순 복제 예술로 인식하던 기성세대와는 다르게 이들은 인쇄되지 않는, 인쇄할 수 없는 만화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만화’를 주제로 한 포퍼먼스, 코스튬플레이(만화분장) 등의 무대공연, 출판이 아닌 전시상품(예술)으로서의 만화 등 여타의 문화장르와 ‘만화’의 결합을 시도하고 있다. 이런 청소년들의 움직임은 ‘만화’와 ‘만화창작’을 전문인의 영역에서 일반인의 영역으로 이끌어내며 ‘만화 대중화’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문자맹신 시대에서의 글쓰기, 작문이 지적 수준을 가늠하는 절대적인 가치였던 것처럼, 시각정보 시대에서 ‘만화창작’은 이 역할을 대신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 천대받던 ‘만화’가 즐거워하고 있고, ‘만화를 하는 사람’들과 이를 보는 이들이 즐거워지고 있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





새천년문화축제 전시책자,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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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평론가 박석환 교수(한국영상대 만화콘텐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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