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신문의 만화관련 보도에 대한 비판적 접근, 코코리뷰, 1999.03.15



머리말


  신문에서 1칸 만화(시사만평)와 4칸 만화의 위치는 결코 가볍지 않다. 가령 박재동의 시사만평은 [한겨레신문]의 초기 판매 부수 확장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에도 [한겨레신문]의 1칸, 4칸, 케리커쳐, 만화삽화 등은 여타 신문들과 비교했을 때, 독자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점은 국내 최대의 일간지로 손꼽히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두 신문사는 과거에도 동일한 표현양식과 엇비슷한 내용을 지닌 만화를 경쟁적으로 게재하면서 만화전쟁을 벌인바(본지 7호, 98년 봄호 ‘신뽀리와 도날드닭의 힘겨루기’ 참고) 있고, 최근에는 신문의 전형적인 1칸, 4칸 만화 외에 <광수생각>과 <도날드닭>(칸의 형식에 구애받지 않은 손바닥 크기의 만화)으로 만화를 통한 경쟁을 벌리고 있다. 이에 뒤질세라 [중앙일보]도 ‘릴레이만화’라는 제목 아래 신인작가들의 만화를 소개하고 있다.


I. 만화의 힘, 언론의 힘


1. 신문에서 만화의 위치


  국내의 중앙지 대부분이 하루에 1칸, 4칸, 독자 만화 등 3개 이상의 신문만화를 게재하고 있으며 스포츠신문에서는 그 외에 3~4편 가량의 장편 연재만화를 수록하고 있다. 이외에도 케리커쳐, 만화삽화 등이 텍스트 중심의 신문 지면에 삽입, 독자의 신문 구독 환경을 용이하게 만들고 있다. 각 언론사들은 이들 만화를 통해 당일의 이슈나 쟁점 등을 독자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가령 한 시사만화에서 대통령의 최근 정책에 대한 희화적 비판을 가했다면, 독자는 이에 대한 정보가 더 충실하게 나열된 기사를 읽으려 한다. 또는 그 자체만으로도 독립된 칼럼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 신문의 만화이다.

  특히, 정기구독자보다 가판 판매에 더 중점을 두고 있는 스포츠신문들의 경우는 하루 4페이지 가량이 1면에 연재되는 장편연재만화가 판매율을 좌지우지하기도 한다. 더군다나 기사와 글만으로 다루지 못하는 영역을 만화라는 매체는 어렵지 않게 소화하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이런 탓인지 프랑스의 유력 일간지 [르몽드]지는 만화를 신문 1면에, 그것도 제호 바로 아래 배치하고 있다. 이는 이 신문이 사진이 진실을 왜곡할 수도 있다는 이유로 게재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더 주목할 만 하다.(손상익, ‘신문만화의 재미와 선별문제’, <<신문은 논술이다>>, 청림출판 참고) 

  이렇듯 신문에서 만화는 중요한 위치를 지니고 있다. 그런 까닭인지 언론사의 ‘만화지원책’도 다양하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만화공모전이다.


2. 신문의 만화지원책 : 아래 것들 길들이기


  [동아일보]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LG와 공동으로 ‘동아 LG 국제만화페스티벌’을 매년 개최한다. 이 행사는 올해로 3회 째를 맞고 있으며 카툰, 이야기만화, 만화스토리, 캐릭터, 애니메이션 등 만화 전 분야에 걸친 국제 규모의 공모전이다. 이 공모전을 통해 입상한 작품들을 중점으로 매년 전시・상영 행사를 열고 있다. [국민일보]는 99년 초 ‘국민만화공모전’을 열고 수상작 전시회를 열었고, [스포츠서울]은 카툰 중심의 ‘서울국제만화전’을 91년부터 8회 째 지속시키고 있으며 연초 신춘문예 ‘만화평론 부분’을 통해 만화평론가를 발굴하는데 일조 했다. 99년 이 부분은 ‘만화스토리’로 변모 아쉬움을 낳고 있다. 


  신문에서 만화의 위치와 신문사들의 만화에 대한 지원의 역사 역시 짧지 않다. 신문만화는 [대한민보](1909. 6.2)에 이도영의 ‘삽화’(揷畵)로부터 9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고, 공모전은 [동아일보]가 1923년 5월 3일 사고를 통해 공모, 70여년의 역사를 지닌다. 이렇듯 신문과 만화의 관계는 두텁다. 그러나 이런 관계에도 불구하고 신문이 만화를 매체로서 바라보는 시각은 매우 편파적이었다.

  97년 만화사태가 있었을 때 언론은 자신들의 이중적인 면모를 만천하에 공개하기도 했다. 당시 스포츠신문의 음란성 여부를 놓고 법정 공방을 벌였던 시민단체들은 스포츠신문에 실린 ‘만화’를 정면으로 공격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기사 내용과 관련 없는 선정적인 화보와 본문과 연관성이 없는 제목으로 독자들을 혼란스럽게 했던 기사, 그리고 몇몇 연재소설 등의 적나라한 성애묘사, 성적인 농담 등을 다루고 있음을 문제로 삼았었다.


  만화는 시민단체들이 문제로 지적했던 것들 중 한 토막에 불과했다. 그러나 언론은 이 문제를 갑작스럽게 ‘만화’쪽으로 몰고 갔다. 일반인들에게 이는 급작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언제나 신문은 만화의 선정・음란성을 문제로 삼아왔었고, 어린이를 위한 매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만화인들을 비난했었다. 불법 출판행위를 통해 불법적인 만화를 유통시킨 사람이 경찰에 잡히면 범죄자를 문제로 삼는 것이 아니라 ‘만화’ 자체를 문제로 들먹였고, 일부 몰지각한 만화 대여업자들이 불법 영업을 해도 사람이 아닌 매체 자체를 문제로 삼기도 했다. 언론의 이와 같은 보도 행위는 스포츠신문의 음란성을 조장한 것이 마치 연재되고 있던 만화였던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이와 동시에 대형 만화가 이현세의 <<천국의 신화>> 음란성 시비가 벌어지면서 시민단체, 언론, 일반인, 법원은 이 문제의 발단은 모른 체로 ‘만화’의 해악성 논의에 바빴다. 이후 언론은 이 문제가 ‘만화’와 ‘만화가’들 만으로 해결되지 않을 듯 하자 다시 자세를 바꿨다. 스포츠신문의 편집장들에 대한 유죄 여부가 불거지자 ‘표현의 자유’와 ‘21세기 문화산업의 총아는 만화’라고 외치기 시작한 것이다. 3개 스포츠신문들은 특집지면을 만들어서 눈물겨운 ‘만화 살리기’ 운동을 벌였고, 중앙 언론지들도 동업자들의 노력에 더 이상 침을 뱉지 않았다. 


3. 신문의 만화에 대한 시각변화. 그러나


  신문이 만화에 호의적이 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산업사회에 대한 불안감과 정보화사회로의 변화, 대중사회의 기틀이 완성되면서 유행처럼 번진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 일본의 대중문화 유입에 따른 문화산업・지식기반산업의 중요성 인식, 비쥬얼 세대의 출현 등이 원인이 되면서 만화는 인종간의 편차를  최소화 할 수 있는 보편적 문화산업 중 하나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어린이들의 코 묻은 돈이 우습지 않음을 ‘서울국제만화페스티벌’의 성공적 개최로 확인하고, 일본의 만화산업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외신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우리의 신문도 만화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일면 만화계에는 뼈아픈 고통이었던 만화사태는 만화산업에 대한 인식을 일반인에게 심어준 중대한 기회 중 하나이기도 했다.

  현재 국내의 만화산업에 대한 기대는 그 수위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부풀려지고 있다. 20여 개에 달하는 전문교육기관이 대학, 유력 단체, 정부기구 등을 통해 생겼고, 수십 억에 이르는 예산이 투입되는 대규모 행사만도 매년 4~5개가 벌어진다. 애니메이션 제작 열기, 다양한 관련산업의 분화 등에 대한 준비 작업 등은 상상을 초월할 지경이다. 

  이런 움직임 탓인지 만화와 만화에 대한 기사가 변하고 있다. 선정・폭력성 시비와 청소년 유해성에 대한 걱정으로 얼룩졌던 신문의 만화 관련 기사가 생산현장에 대한 보도, 만화에 관련된 정보, 유명만화가에 대한 탐구 등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즐거워 할 이유도 없다. 


영화・비디오 관련 기사는 한마디로 시궁창이다. 언론의 존재 이유에 회의를 가지게 하는 영화・비디오 관련 기사가 우리 나라의 영상문화, 영상산업을 망치고 있다는 주장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관례처럼 오가는 영화계의 촌지, 선정주의와 상업주의에 찌든 스캔들 기사, 이해관계에 얽매인 홍보성 기사, 기자의 비전문성과 무지에서 비롯된 편파・왜곡보도 등 도무지 어디부터 손을 써야할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 어느 연예신문의 편집주간은 칼럼에서 {필라델피아},{M버터플라이},{크라잉게임} 등을 동성애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배격해야 할 나쁜 저질 영화’로 단정하고 추방을 주장하는 지경이고 보면 절망하지 않을 수 없다. - ‘언론이 나라를 망친다!’ [영화저널], 94.7.1. 강준만,{고독한대중},개마고원96 재인용


  전북대 강준만 교수는 이 글을 인용한 저서에서 ‘2년 전에 나온 글’, ‘지금은 많이 달라졌을까?’라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로부터 3년 후. 영화・비디오 관련 기사가 시궁창에서 벗어났는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만화・애니메이션에 대한 기사는 한마디로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을 듣는 것 같다. ‘만화 관련 전문기자가 없고, 만화계 자체가 아직 두텁지 않으니 이해해야지’라고 스스로를 달래보지만 믿을 수도 안 믿을 수도 없는 것이 신문이고 보면 문제를 문제로 남겨둘 수만은 없는 일이다.


  작가나 작품의 이름을 틀리는 것은 대스럽지도 않다. 기사원에 대한 검증 없이 이유 없는 신뢰만으로 쓰여진 보도와 확실하지 않은 규모와 수치들을 마구잡이로 기록하고, 무지와 비전문성을 드러내놓고 전개하는 논지는 역겹기까지 하다. 작품을 봤는지 조차 의심스러운 촌평과 기사원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쓰여진 글들을 정보랍시고 스크랩하기도 망설여진다. 타 신문의 기사도용도 도를 넘어선다. 한 신문에 실린 기사원이 한 달 내내 각종 신문을 표류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 주제에 최근의 창작 경향이나 앞으로의 흐름을 예견하기도 한다. 얼통당토 않은 작품 군들을 하나의 장르로 엮어 놓고 듣도 보도 못한 갈래를 만들어 내며 ‘구라’를 까는 데는 기(氣)가 차서 당장에 ‘도(道)에 관심 있으세요?’라고 묻는 사람을 찾아가고 싶을 지경이다. 


II. 신문의 오보, 만화를 망친다


‘이현세의 성인만화’

아마게돈(KBS2 밤 9시)

=만화가 이현세가 영화감독으로 변신해 만든 성인용 만화영화. 


   [동아일보] 99년 2월 13일자 설날 특집 TV 예고란에 실린 내용의 일부다. 한 친구가 이 기사를 보고 전화를 해왔다.


  “야, TV판 애니메이션 {아마게돈}이 설날 특집으로 하나보더라. 성인용으로 한다는데.”


  이현세는 성인만화를 여러 편 그렸다. 그러나 {아마게돈}이 이현세의 성인만화도, 성인용 만화영화도 아니다. 9?년 어린이용 만화잡지 [아이큐점프]의 창간과 동시에 인기리에 연재됐던 동명의 출판만화가 원작. 이 작품이 9?년 극장용 만화영화로 제작됐다. 기획・기술력 등이 저급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고, 흥행에 참패했다. 이후 극장판이 비디오로 소개됐다. 그 작품 {아마게돈}은 출판물도 영상물도 청소년용. TV판 성인용으로 재 제작됐다는 말은 금시초문이고, 성인용이라면 공중파 방영 자체가 의문시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신문에 그렇게 나왔어. 진짜야!’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 친구를 어찌하나? 고작 만화평론가라는 직함을 가진 놈팽이의 머리에 담긴 정보를 신뢰하고, 네가 신문에서 직접 얻은 사실이 거짓이었다고 조목조목 설명해줄까? 난감하기 짝이 없다. 그 친구에게 [동아일보]는 믿을게 못된다고, 내 말을 믿으라고 어떻게 말하나? 내 스스로도 나보다 [동아일보]를 더 신뢰하는 판국에.

  나는 결국 방법을 바꿨다. [동아일보]를 믿지 않을 수도, 내가 알고 있는 정보를 부정할 수도 없음으로 ‘네가 잘 못 봤을 거야. 그렇지!’라며 수화기를 내려놨다.


  우리 나라의 신문들은 TV 프로그램 안내란 위에 다음과 같은 사항을 적어둔다. ‘방송국의 사정상 프로그램 및 방송 시간이 변경 될 수 있습니다.’ 묘한 문구다. 남의 사정 봐주는 것이 나쁠 것은 없지만 하늘이 정하는 ‘일기’를 예보하는 것도 아니고 사람이 정하는 것, 그것도 방송프로그램은 예보가 아닌 공고 수준인데도 변경 될 수 있다고 뻔뻔스럽게 적어 놓는다. 이런 판국에 신문의 어느 곳을 제대로 믿을 수 있는가? 공고하는 것도 변경 가능한데 이들의 논지에서 변하지 않을 사실을 보고, 미래를 예상할 수

있겠는가? IMF가 내일 찾아온다고 하더라도 ‘변경 가능’한 것을 믿고 따를 수 없는 일 아닌가. 

  앞선 글을 통해 필자는 절친한 친구 한 명을 신문도 똑바로 읽지 못하는 바보로 만들었다. 그 친구가 무슨 죄가 있겠는가? 이 친구 외에 이 신문을 본 백만 이상의 독자들은 또 무슨 이유로 엉뚱한 사고를 칠까? TV의 영화 프로그램이 다채로워지면서 잘 보면 ‘비디오 테이프 대여료 1,000원 건진다’는 농담이 생겼다. 이 농담을 빌리자면 [동아일보]의 오보를 본 독자들은 건질 수 있는 1,000원을 낭비한 샘이다. ‘성인용’이라는 것 외에 방송시간이 ‘밤 9시’라는 것도 터무니없는 거짓말이었다. 


1. 만화관련 기사 분석


  본 논고의 자료 수집을 위해 PC통신 하이텔의 신문검색 서비스를 이용해서 ‘중앙 일간지 정보검색’을 시도했다. 검색식을 ‘만화&애니메이션’으로 지정(99.2.14 현재)했더니 무려 933건의 기사가 검색됐다. 이 엄청난 기사량은 일반인과 언론의 만화에 대한 태도 변화를 읽을 수 있게 한다. 신문이 이렇게 많은 지면을 할애하며 만화를 다루는 것은 그만큼 우리사회에서 만화의 위치가 상승하고 있음을 알게 한다. 현재 10대 중앙 일간지와 3대 스포츠지 중 독자적인 만화지면이 있는 곳은 3개지. [국민일보]와 [일간스포츠], [스포츠서울]이 1면 전체를 만화관련 기사로 채우고 있다. [국민일보]의 기사량은 131건으로 최고치를 보인다. 이밖에 124건으로 2위를 기록한 [중앙일보]는 문화 섹숀, J스타일 등의 코너에서 만화관련 기사를 소개하고 있고, [한국일보](103건)와 [동아일보](91건), [한겨레신문](89건)도 많은 량의 만화기사를 다루고 있다.(단, 주제어 검색을 통해 나타난 일부 기사는 만화 관련 기사가 아닐 수도 있다.) 


  신문이 만화와 관련해서 잘못된 기사를 보도하는 형태는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다. 객관적 오보의 형태로는 무지한 인식을 바탕으로 정보의 신빙성을 강조하는 기사를 첫째로 꼽을 수 있다. 과거 문화부 기자의 신문사내 위치는 심한 말로 ‘떨거지 신세’. 문화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는 옛말이 됐고, 문화계 전반에 걸쳐 전문기자들이 나름의 역량을 과시하고 있다. 이들은 기자직을 사퇴하고 해당분야의 전문인으로 나서서 그 분야를 살찌우는데 한 몫을 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의 ‘막 쓴다’는 이미지는 여전하다. 특히 스포츠신문들의 경우는 도를 지나쳤다. 


  (1) 무지한 인식, 잘 못 활용한 지식


  [스포츠서울]은 98년 11월 26일 ‘신문연재만화의 정수를 선보이고 있는 스포츠서울이 독자여러분의 만화에 대한 관심에 부응하기 위해 만화면을 신설했습니다. [……] 만화계의 재미있고 빠른 소식을 전달하고 일본만화의 국내시장 개방 움직임에 대비, 참신한 작가들의 발굴에 노력을 하겠습니다.’라며 한발 앞서 만화면을 선보였던 경쟁지 [일간스포츠]의 행보에 동참했다. 그러나 ‘처녀 총각 아저씨 아줌마 ‘만화는 내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시작된 기사에서부터 문제점을 드러낸다. 


<<누들누들>> 바람에 힘입어 성인만화 시장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 [……] 단행본 만화시장에 성인만화 붐이 일고 있는 것. [……] 양영순씨를 비롯해 박성훈 조운학 이상세 한승준씨 등이다. [……] 이들과 함께 김연서 백두산 김두영 최상성 이종원 조성빈씨 등도 성인만화 시장의 중요한 축을 이루며 저변확대를 위해 한몫을 하고 있다. 


  무리 없이 읽히는 듯 싶다. 그러나 기자의 만화계에 대한 기초지식이 전무함을 지적할 수 있다. 국내 출판만화의 유통시장・구독환경 이원화라는 측면이다. 간단히 이를 소개하면 판매용과 대여용 출판물의 유통과 구독환경이 다르다는 것이다. 여기서 <<누들누드>>는 판매용, 이른바 ‘코믹스’ 출판물, 양영순의 활약에 힘입어 ‘성인만화시장…저변확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작가들은 ‘일일만화’라고 하는 대여용 만화 출판물을 제작하는 작가들이다. 양영순의 활약과 이들의 활약은 다른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기자가 예로 든 빌려보는 만화의 작가들은 오히려 팔기 위한 만화를 그리는 양영순의 시장을 망가트리고 있는 경우다. 


  ‘김성모 일본만화 개방 두렵지 않다’(최용기, [스포츠서울], 99.1.3)는 기사를 보자. 

  일본문화 개방으로 만화시장의 약 80%를 점할 정도로 일본만화의 기세가 드높다. [……] 그런 가운데 적극적인 발상으로 일본 시장에 도전하거나 우리의 개성을 살려 일본만화에 맞서는 만화가들이 있다. [……] 2년 전 기업형의 김성모 프로덕션을 설립, 일본 만화 시스템에 맞춘 분업화를 정착시키는 등 일본 진출 채비를 마쳤다. [……] 작업 인원만 50명이 넘는다. 김씨가 스토리 등 큰 기둥을 제공하고 나머지는 분업으로 진행된다. [……] 한 달에 5~6개 타이틀로 12~13권을 내고 있다. 


  문화산업에 대한 관심과 우리 국민의 어처구니없는 통계 산출법이 만들어낸 ‘약 몇 %’라는 식의 믿을 수 없는 정보 제시에 대한 지적은 다음 항목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이 기사는 김성모라는 만화가가 일본만화에 맞서기 위해 작업인원 50명으로 한 달에 12권 가량의 만화를 제작하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만화의 발전을 막고 있는 대표적인 사항,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는 만화비평의 쟁점 사안은 ‘공장제 만화제작 시스템’에 있다. 이름 값만 있으면 ‘만화방’에서 기본 부수를 팔 수 있다는 안전장치가 우리 만화의 경쟁력을 저하시키는 원인이었다. 김성모는 우리만화의 중견작가들이 호된 비판 끝에 떠난 일일만화계에서 얼마 전 떠오른 신예 만화가. 사전 지식없이 취재원에 대한 신뢰에 의해 쓰여진 듯한 이 기사는 우리만화의 혼을 싸구려로 제작, 팔고 있는 이를 갑자기 독립투사로 만들어 놨다. 

  [스포츠서울] 기자들의 잘 못된 지식(정보)에 의해 쓰여진 오보 사례들을 몇 가지 더 살펴보면 ‘일본요리만화 인기 톱(98.12.3, 서병기)’이라는 기사에서 기자는 <<맛의 달인>> 등의 일본 요리만화들을 소개한다. <<AB화실의 요리조리>>도 함께 했다. 작가의 이름조차 거론하지 않은 기자의 기사작성이 우리작가 박무직의 만화를 일본만화로 오해하게 만든 사례다. ‘‘처형자’, ‘야인’ 인기폭발 박인권씨’(98.11.27최용기)에서는 ‘만화가 박인권씨는 연구하는 작가’, ‘박씨가 평가받는 또 다른 이유는 한 제목으로 지나친 장편을 만들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적고 있다. 그러나 기자가 예로 든 <<칼새>>와 <<깜방>>은 수 십권 분량의 시리즈 물이다. ‘이규형의 일본연예계는’(98.3.15)에서도 이런 종류의 오류를 많이 찾을 수 있다. 여기서는 ‘문화산업꾼’ 이규형이 잘못 짚은 꽁수 하나를 찾아보자. 그는 일본의 라이벌 만화잡지사의 최고작들을 한데 묶은 [빅점프](서울문화사)식 잡지 제작에 돈이 보인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일본문화의 개방’을 논하던 필자의 논지에는 역부족인 예시에 불과하다. 이미 우리 출판사들은 일본만화잡지의 국내 유입이 가능해지면서 동일한 ‘잡지명을 어떻게 할 것인가?’로 고민하고 있다. ‘원작 만화 스크린 작업 러시(99.1.22, 김세훈)’라는 기사에서는 만화의 제목과 영화의 제목이 동일할 뿐인 작품들을 영화의 원작이라고 소개한다. ‘영화 <<짱>>은 만화가 임재원, <<닥터K>>는 일본만화가 마후네 가즈오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했다는 것이다. 이 역시 잘못된 기사.   

  [일간스포츠]는 이보다는 형편이 나은 편이다. 그러나 [미스터블루]에 <<하우 뚜 쎅스>>를 연재했던 강성수의 작품을 ‘포르노류’(98.12.23, 김가희)라고 규정하는가 하면, 만화평론가 박인하의 입을 빌려  ‘호러는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환타지’, ‘앞으로 뮤지션, 요리만화처럼 전문장르의 하나로 받아들여질 것’(98.11.3, 이민주)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뮤지션, 요리만화를 한 갈래로 묶는 것을 문제로 지적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여기에 ‘호러’라는 갈래를 빗대는 것은 당치도 않다. ‘호러’는 ‘공포물’. 공포물은 초기단계의  갈래 구분점이다. 이것을 말 그대로 갈래갈래 찢어진 장르에 비교하는 것은 잘 못이다. 

  이 글을 위한 신문자료 검색 시 얹은 자료에 의하면 종합지에서는 이와 같은 경우를 찾을 수는 없었다. 다만 서로 상이한 정보를 기록 독자에게 혼란을 주는 경우를 발견 할 수 있었다. ‘만화가 양영순의 알굴렘 페스티벌 관람기(99.2.9, 양영순)’에서 필자는 ‘지난해 프랑스 최대 베스트셀러 만화라는 <<마나라(Manara)>>….’에 대한 자신의 감상을 밝힌다. 그러나 동일지 99년 1월 12일 자 ‘한창완의 유럽만화 유람’에서는 유럽 성인만화의 전설, 위고 프라트(Hugo Pratt)에 대해 논의하면서 ‘주요 작품으로는 85년의 <<마나라(Manara)>>….’라고 적고 있다. 기사대로라면 85년 작인 <<마나라>>가 98년 베스트셀러 만화라는 걸로 이해된다. 이 작품은 작가의 연작 시리즈물로 알려져 있다. 


  (2) 검증되지 않은 통계자료 


  신문은 각종 사회지표를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다는 데에 강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신문의 한계는 바로 이 점에서 도드러진다. 신문인들 스스로가 각종 통계와 지표들을 통해 자신의 논지를 일반에게 사실화시키려는 노력을 의도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겨레신문](98.10.20) 안정숙 김보근 기자는 ‘[… …] 번역 일본만화는 이미 3991억원의 국내 만화시장에서 약 절반수준인 1878억원의 판매액을 올리고 있는 실정’이라면서 ‘절반수준’을 강조한다. 이것이 [한겨레신문](98.11.27) 한 달여 만에 박민희 기자의 만화가 백성민 인터뷰 기사를 통해 20% 상승한 것으로 나타난다. 백성민은 이 기사에서 ‘이미 70% 이상을 일본만화가 차지하고 있’다고 현장 증언을 한다. 그리고 다시 한 달여가 지나자 이 수치는 90%로 늘어난다. [동아일보](98.12.31) 이호갑 기자는 ‘99 한국만화전망’이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국내 출판만화시장은 연간 4천 억원 규모(97년 기준). 98년에는 … 발행 부수가 50% 줄었다는 것이 업계의 추산. 일본에서는 … 매주 4백만 부 이상 발행되며 96년에만 23억권을 발행, 6조원 어치나 팔았다. 90년 부분개방 이후 국내 출판만화시장에서 일본만화 점유율은 47%. 해적판까지 합치면 90%. 최근 출판만화 전면개방으로 한국만화가 고사 당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라며 호들갑을 떨고 있다. 그러나 과연 일본 만화의 국내 시장 점유율이 90%나 될까? 만화 도매상을 찾기 어렵다면 가까운 만화방이나 도서대여점을 가보자. 그곳이 국내 만화유통시장의 축소판 역할을 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90%라면 그곳의 서가를 잔뜩 메우고 있는 것이 모두 일본만화란 이야기다. 한해를 지나자 이 수치는 10%가 하락한다. ‘발기5주년 맞는 만화발전 연대모임’이라는 제하의 기사([경향신문], 99.2.11)에서 김윤덕 기자는 정체불명의 취재원의 말을 인용한다. ‘성인만화잡지의 폐간으로 만화가들의 작품발표 창구가 막혀버렸습니다. 96년과 비교하면 출판만화시장의 80%이상이 와해된 상태’. 취재원의 침통한 진술과는 별개로 국내 만화시장은 새해를 맞으며 ‘만화시장 20% 고수’라는 상승세를 나타내는 것으로 정리된다. 그러나 이 기사를 신뢰할 수 없음은 이어지는 수치 인용을 통해 금방 알 수 있다. 기자는 우리만화 발전을 위한 연대모임이 ‘그 동안 200여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일간스포츠](99.1.26)는 그보다 앞서 ‘우만련’의 회원이 ‘만화계 현장의 400여명이 회원으로 등록’돼있다고 적고 있다. 도무지 누구의 어떤 말을 믿어야 할지, 어떤 기사를 사실로 여겨야 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또, 앞서 20%정도를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우리만화의 시장점유율에 대한 색다른 견해도 있다. ‘요즘 인기만화의 80% 정도는 전부 한국만화예요.’ [동아일보](99.1.21) 김희경 기자는 황경태 학산문화사 사장의 말을 빌어 20%라는 낮은 점유율에도 불구하고 우리만화는 인기순위의 상위 80%를 점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역시 믿을 수 없기는 마찬가지.

  일본만화에 대한 통계나 수치도 저마다 다르다. [동아일보] 이호갑 기자는 96년에 일본만화의 발행 부수를 23억 권이라고 적고 있다. 반면 [스포츠서울](99.1.28)의 최용기 기자는 ‘일본만화엿보기’라는 컬럼을 통해 ‘1년 30억 권 정도가 발간되는 대규모의 만화시장은 일본을 만화왕국….’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최근 일본 출판만화의 자국내 입지가 감소세에 있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 그러나 기자는 ‘1년 30억 권 정도’라는 안일한 수치를, 그것도 96년 잡지 연재만화의 전성기에 비해 성장한 것으로 적고 있다. 자신이 검증한 자료나 출처에 대한 언급도 없다. ‘30억 권 정도’라는 수치는 어느 정도인가? 일반 독자로서는 어림잡을 수 없는 규모고 통계에 불과하다. 이와 관련 [일간스포츠](98.11.23)는 비교적 자세한 정보를 제시하고 있다. ‘일본 어린이 만화잡지 발행 부수 감소세’라는 기사의 부분을 소개한다.


  어린이용 월간 만화잡지의 경우 93년에 1억7천8백90만 여부였으나 94년에는 1억7천4백30만 부로 전년보다 2.6%가 줄어들었으며 지난해엔 1억5천1백52만 부로 전년(1억5천9백56만 부)보다 5%가 감소했다. 주간만화잡지도 95년을 고비로 감소세로 돌아섰다. 그해 5억 1천2백95만 부로 무려 7%가 감소한데 이어 지난해에는 4억6천2백50만 부로 다시 10%가 하락했다. [… …] 일본에서 발행되고 있는 어린이용 월간 만화잡지는 지난해 현재 61개지(소년16종, 소녀45종)에 달하며 어린이용 주간만화잡지는 4개지(소년4종)로 파악되고 있다. [… …] 성인용 월간 만화잡지는 지난해 3억6백89만 부가 팔려 전년 대비 0.3% 증가, 별 변화가 없었으나 주간은 2억9천5백26만 부로 5.5.%가 감소해 대조를 이뤘다. (이 기사의 출처는 한국잡지협회, [잡지세계] 98. 11월호 임을 밝히고 있다.)


  (3) 기타 : 매체 폄하적 논지, 최고・최초 병(病)


  이것을 신문의 오보라고 말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펜과 인쇄물이 ‘힘’의 상징이 될 수 있다면, 특정 매체나 개인에 대한 폄하는 오보 이상의 오보가 될 수 있다. 그만큼 신문의 영향력은 거대하고, 그에 대한 반대급부는 존재한다. 신문 기자들의 보도관행에 대한 비판적 용어로 활용되는 것이 ‘하이에나 저널리즘(hyaena journalism)’이다. 이에 대해 수원대 박현태 교수는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힘이 있다고 여겨지면 슬금슬금 면종복배의 자세를 취하다가, 일단 약세가 보여진다고 판단되면 태도를 표변하여 과감히 떼거리로 나서서 물어뜯어 낡은 권력의 잔재를 치사시킴으로써 치사를 부추기고 있는 새로운 권력에 아부하고 그것의 비호를 유도하는 유형을 의미한다. 박현태, {하이에나 저널리즘}, 동방미디어 96, 27p.


  한때, ‘왜, 우리 나라 코미디는 거지나 도독만을 다루는가?’ 라는 비판이 쏟아졌었다. 이에 대한 방송인들의 답변은 ‘그들만이 조직과 단체를 이루지 않고, 방송사에 항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를 다시 말하면 힘이 없는, 또는 합법적인 의사표명이 불가능한 이들은 비하해도 괜찮다는 논리가 된다. 기실 그 동안의 만화가 다루는 주제 역시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문제는 신문의 이러한 보도관행이 일반독자의 뇌리에 ‘만화’라는 매체를 인식화 시키는데 있다. 신문 지면을 통해 ‘만화’ 또는 ‘만화적’, ‘만화 같은’이란 의미는 ‘말도 안돼는’, ‘있을 수 없는’ 등의 의미와 상통한다. 이는 신문에서 ‘만화’에 대한 인식을 달리하고 있는 이즈음에도 유효하며,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기간동안 이러한 의미가 통용될지 모른다. 

  이 논고를 위한 신문 검색에서 과거와 같은 신문의 매체 폄하적 논지를 찾기는 어려웠다. 앞선 글에 빗댄다면 신문은 이제 만화의 문화산업에 대한 기대감 때문에 ‘면종복배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 중이다. 이것이 얼마나 오래 갈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문화일보](99.1.20) 조우석 기자의 글쓰기는 ‘만화’에 대한 대중의 깊숙한 인식을 다시 한번 자극하는 수준을 보여준다. ‘문학의 위기 보여주는 스타급 젊은 작가들’이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기자는 소설가 은희경의 신작 소설에 대한 비평을 위해 본문 중 ‘순정만화풍의 남자 친구’라는 부분 등을 지적하며 ‘순정만화 수준의 필력은 따라서 악문을 거듭 만들어낸다.’고 적고 있다. 순정만화작가들이 보면 침통한 심정을 금치 못 할 지적이다.


  이와 함께 이슈 위주의 기사를 만들고자 노력하는 기자들의 괘씸한 의도를 보자. 최근 한 일본인에 의해 쓰여진 {맞아죽을 각오를 하고 쓴 한국, 한국인 비판}이라는 책에는 한국 언론에 대한 비판이 있다. 그중 우리를 민망하게 하는 것이 ‘최초, 최고’라는 것이다. 글쓴이는 한국에 세계 최초, 세계 최고가 너무 많아 그걸 다 믿을 수가 없다고 했다. 가령 아시아 최고층 빌딩이라고 자랑하던 63빌딩. 승강기에 오르니 60층이 최고층(지하3층을 합쳐 63빌딩)이었다고 말한다. 63빌딩 이전까지 아시아 최고층 빌딩은 일본의 62층까지 건물. 한국사람들은 이를 이기고 싶어 안달을 한다는 것. 그의 비판을 전부 수긍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일류 병에 허덕이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번 신문 기사 검색을 통해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한겨레신문](98.12.10) 박민희 기자는 <<검정고무신>>을 ‘한국만화사상 최장기 317회 연재’했다고 떠들었다. 한국만화의 역사가 주간지 연재 317회(만 7년)를 최고로 기록할 만큼 왜소한가? 물론, 그의 기사가 틀리다고 할 수는 없다. 만화잡지 연재 사상 최장기인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기자는 잡지가 아닌 ‘만화’라고 했다. 이 기자가 신문만화를 신문과 만화의 역사 속에서 들춰봤더라면 이런 식의 기사는 나올 수 없다. [일간스포츠](99.1.26) 김가희 기자는 ‘재해애니메이션이 뜬다’는 보도를 했다. 제목만으로 본다면 지금 뜨고 있다는 이야기 갔다. 그러나 본문은 ‘국내에서 제작된 세계 최초의 재앙 애니메이션이 TV로 방영된다.’는 홍보성 보도이다. ‘재해’나 ‘재앙’이라는 것을 하나의 장르처럼 이야기하는 것도 우습지만 이를 ‘세계 최초’라고 우기는데는 할 말이 없다. ‘지구환경보호라는 교육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레스톨 특수구조대>>. 이를 세계 최초라고 자신했을 제작자, 그리고 그 장단에 놀아난 기자의 행실이 마땅치 않다. [경향신문](99.2.8) 배장수 기자의 ‘최초, 최고 애니메이션 신화 연다’는 기사는 국내 3D 애니메이션을 세계적 쾌거처럼 홍보한다. 최근 개봉한 3D 극장용 애니메이션 {철인 4천왕}을 ‘{로보트 태권V} 이후 23년만에 선보이는 극장용 로봇 만화영화’(태권V의 마지막 시리즈가 90년. 전후로도 몇 편의 로봇 애니메이션이 있었다)라고 거짓말을 하면서 ‘첫 극장용 3D 애니메이션인 {토이스토리}도 인물은 거의 마네킹 수준.’이라며 자기애에 빠져든다. 


  2. 신문의 공정성에 대하여


  뉴스는 대중들의 정치적・사회적 판단, 일상 생활세계 안에서의 태도・가치・평가의 자원이 된다. 뉴스가 판단과정의 자원이 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요건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사실(what is)에 대한 판단’, ‘무엇이 바람직한가(what is good or desirable)에 대한 판단’, 그리고 ‘무엇이 가능한가(what is possible)에 대한 판단’이다.-Therborn, G. 강명구, {한국 저널리즘 이론}, 나남94, 94p 재인용


  일반적으로 기자는 사실의 전달을 통해 수용자에게 정보 제공과 함께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그러나 기자의 역할이나, 짧은 기사문이 이 모든 것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더군다나 소설가의 상상력이 주는 재미, 사회과학자가 행하는 과학적 분석의 중간자적 위치를 점하고 있는 최근의 기사작성 관례는 앞선 세 가지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게 한다. 그럼에도 우리가 신문에 요구하는 것은 공정성이다. 뉴스의 공정성 문제에 대해 서울대 강명구 교수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뉴스의 공정성의 문제는 결국 그것이 객관적일 수 있는 가라는 인식론적 질문과 보도의 내용과 과정이 사회의 공동선에서 보아 윤리적으로 정당한가, 그리고 정의로울 수 있는가 하는 이데올로기 비판적 질문이라는 세 가지 차원을 가지는 것이다.’(위의 책, 37p) 

  이를 검증하기 위한 ‘뉴스 공정성의 평가 모형’을 보면 사실성, 윤리성, 이데올로기 검증으로 나뉜다. 그 하위 범주들로는 각각 정확성・균형성, 합법성・윤리성, 전체성・역사성을 본다. 본문에서 우리가 주의 깊게 관찰했던 933건의 기사들 중 문제성을 지닌 몇몇 기사들은 이와 같은 공정성을 잃고 있다. 


맺음말


  오보는 기자, 신문사의 입장이 강하게 개입, 의미해석과 전달 과정에서 오류가 생긴 ‘주관적 오보’와 사실을 기록, 전달하는 과정에서 오류를 저지르는 ‘객관적 오보’의 경우로 나눌 수 있다.

  98년 8월 언론개혁시민연대는 건국 이후 대표적인 신문의 허위・왜곡보도사례를 선정 일반에 전시했다. 문화방송의 시사보도 프로그램 [피디수첩]은 한 달여 뒤, 이를 토대로 언론이 안보 상업주의적 관점에서 터뜨린 오보들을 집중 조명한다. 이 과정에서 98년의 10대 뉴스를 장식한 ‘[조선일보] 이승복 사건 오보 공방’이 벌어진다. [한겨레신문]은 ‘미디어비평’이라는 고정 칼럼을 통해 동업자들의 잘잘못을 가리고 있다. 대표적 미디어 권력 기관인 신문사. 수용자 중심 시민연대의 감시기능이 강화되면서 신문의 지형도가 달라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신문권력을 포기하지 않는다. 잘못된 보도관행을 고치려 하지 않고, 잘못된 보도로 인한 기사원의 피해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다. 더 큰 문제는 그들이 오보에 대한 정정, 잘못에 대한 반성을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권위주의적 가치관, 우리사회 대표 엘리트라는 선민사상에 젖어서 도무지 빠져 나올 생각이 없는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들이 내세우고 있는 신문권력을 저지할 수 있는 방법은 현재로선 시민권력의 출현일 수밖에 없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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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평론가 박석환 교수(한국영상대 만화콘텐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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